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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하의 시시각각] 앞으로 통일은 금기어가 되나

중앙일보

2025.06.26 08:28 2025.06.26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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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한국에서도 통일이란 단어는 금기어가 될 모양이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는 지난 24일 기자들과 만나 “평화와 안정을 구축한 토대 위에서 통일도 모색할 수 있기 때문에 통일부 명칭 변경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북한이 통일 개념을 폐기한 것에 주파수를 맞추겠단 얘기다.

정동영 “통일부 명칭 변경 검토”
김정은 반통일 선언 호응하는 셈
통일은 헌법정신, 논의 신중해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23년 12월 노동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남북관계를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완전히 고착됐다”며 “대한민국 것들과는 언제 가도 통일이 성사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그는 지난해 1월엔 “민족 역사에서 통일·화해·동족이란 개념 자체를 완전히 제거해 버려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입만 열면 통일을 부르짖던 북한이 갑자기 반통일로 급변침하자 지난해 한국의 친북 단체들도 부랴부랴 강령에서 통일을 삭제하고 조직을 재편하는 법석을 떨었다.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통일하지 말자”고 주장해 논란을 일으켰다. 그러다 정권이 바뀌니 이젠 정부 조직에서 ‘통일’을 삭제하는 흐름이 본격화된 것이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가 6월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남북관계관리단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에 도착해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북한은 김정은 1인 독재체제니 통일이든, 반통일이든 김정은 마음대로다. 하지만 명실상부한 민주공화국인 한국은 다르다. 한국의 국가 운영 원칙은 헌법에 규정돼 있으며 이건 대통령이나 여당이라도 국민투표 없이 마음대로 바꿀 수 없다. 이런 측면에서 통일부 명칭 변경은 매우 신중히 접근해야 할 사안이다. 통일은 헌법정신이기 때문이다.

우선 헌법 전문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국민적 사명으로 규정하고 있다. 헌법 4조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고 돼 있다.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66조3항)를 지고 있으며, 취임 때 “조국의 평화적 통일에 노력할 것을 엄숙히 선서”(69조)해야 한다. 이렇듯 헌법 곳곳에 통일이 등장한다. 특히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3조)는 규정은 분단 극복과 통일이 한국의 태생적 운명임을 강조한 것이다.

2008년 1월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정권인수위가 통일부를 폐지해 외교부로 통합하는 정부 조직개편안을 발표한 적이 있다. 그러자 당시 대선 패배 후 은거하던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은 개인 성명서를 내 “통일부는 정부의 민족 통일에 대한 의지를 상징하는 부서인데 이를 폐지하는 것은 새 정부의 통일 노력 포기로 간주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2024년 1월 15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민족력사에서 통일, 화해, 동족이라는 개념자체를 완전히 제거해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20년 만에 다시 통일부 장관에 지명된 정동영 후보자가 이번에 꺼낸 것은 부서 명칭 변경이지 조직 폐지는 아니다. 하지만 통일부 명칭에서 통일을 빼는 것 자체가 김정은의 반통일 선언에 호응하는 제스처다. 정 후보자가 과거에 이명박 정부를 비판했던 것처럼 이재명 정부가 통일부 명칭을 바꾸는 것도 통일 노력 포기로 간주할 수 있다.

통일부는 부서 명칭이 모든 것이나 마찬가지다. 사실 조직·예산 규모만 보면 굳이 통일부를 독립 부처로 존속시킬 이유가 없다. 그런데도 통일부를 독립 부처로 운영하는 건 통일이란 헌법적 가치를 존중해서고, 대외적으로 한반도 통일의 당위성을 알리려는 목적이다. 만약 통일부 명칭을 남북협력부로 바꾼다고 해보자. 그럴 거면 굳이 독립 부처로 운영할 게 아니라 외교부 산하 기구로 가는 게 훨씬 효율적일 것 같다. 가령 한·미 협력이 남북 협력보다 훨씬 업무가 많은데 그렇다고 한·미협력부를 만들자는 얘기는 없잖은가.

어쩌면 남북협력부도 문제가 될지 모른다. 지금 북한은 자신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부르라고 요구하니 말이다. 북한에 맞춰주려면 한·조협력부로 가야 하나. 북한과 대화하려니 북한의 입장을 무시할 수 없다는 고심은 이해한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헌법정신과 직결된 사안은 사회적 공론화 과정을 충분히 거친 다음 결정해야 한다.

김정하 논설위원



김정하([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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