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상학 기자] 2019년 내셔널리그(NL) 사이영상 레이스 선두주자였던 류현진·(38한화 이글스)을 밀어낸 ‘지구 최강 투수’ 제이콥 디그롬(37·텍사스 레인저스)이 화려하게 부활했다. FA 이적 후 팔꿈치 인대접합수술을 받으면서 1년간 재활하는 시련을 겪었지만 보란듯 다시 살아났다.
디그롬은 지난 26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 오리올파크 앳 캠든야즈에서 열린 2025 메이저리그 볼티모어 오리올스와의 원정경기에 선발 등판, 7이닝 1피안타 2볼넷 7탈삼진 무실점으로 텍사스의 7-0 완승을 이끌었다. 시즌 8승(2패)째를 따낸 디그롬은 평균자책점도 2.24에서 2.08로 낮췄다.
6회까지 퍼펙트 행진을 펼칠 만큼 압도적인 투구였다. 7회 선두타자 잭슨 홀리데이에게 볼넷을 주며 퍼펙트가 깨졌고, 8회 선두타자 콜튼 카우저에게 우전 안타를 맞아 노히터도 무산됐지만 디그롬의 부활을 재확인할 수 있는 경기였다. 총 투구수 89개로 최고 시속 100.1마일(161.1km), 평균 98.4마일(158.4km) 포심 패스트볼(31개)을 비롯해 슬라이더(35개), 체인지업(19개), 커브(4개)를 던졌다.
포심 패스트볼 구속이 시즌 평균보다 1.3마일(2.1km)이나 더 빠르게 나올 만큼 힘이 넘쳤고, 평소보다 체인지업 비중을 높여 결정구로 적절하게 활용했다. ‘MLB.com’에 따르면 경기 후 디그롬은 “상대 팀들이 나를 공략하려고 할 때 대부분 두 가지 구종만 보고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초반부터 다양한 구종을 섞어 던졌고, 경기 내내 그렇게 하려 했다”고 말했다.
디그롬의 노히터를 저지한 카우저는 “오늘 디그롬은 진짜 플러스, 플러스급 구위였다. 슬라이더 제구도 정말 좋았고, 체인지업도 예전보다 더 많이 섞어 던졌다. 여기에 패스트볼 제구까지 되니 정말 까다로웠다. 3가지 구종 전부 제구를 하면서 던지면 상대 입장에선 정말 힘들다. 그래서 첫 안타를 치고 나서는 안도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사진] 텍사스 제이콥 디그롬. ⓒGettyimages(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로써 디그롬은 최근 13경기 연속 5이닝 이상, 2실점 이하 기록을 이어갔다. 전신 워싱턴 세너터스 시절 포함 텍사스 구단 역사상 최장 기록으로 올 시즌 메이저리그 최장 기록이기도 하다.
시즌 전체 성적도 16경기(95⅓이닝) 8승2패 평균자책점 2.08 탈삼진 94개 WHIP 0.88 피안타율 1할8푼9리. 아메리칸리그(AL) WHIP 2위, 평균자책점·피안타율 4위, 다승 공동 4위, 이닝 9위에 오르며 부활을 알리고 있다. 디그롬은 “너무 앞서나가려 하지 않는다. 하루하루 집중하고, 마운드에서 매 투구마다 집중해서 스트라이크존을 공략하려 한다. 만약 실투가 나오면 그 다음 공을 잘 던지려 할 것이다”며 너무 들뜨지 않았다.
2014년 뉴욕 메츠에서 데뷔한 디그롬은 그해 NL 신인상으로 화려하게 등장했다. 2018~2019년에는 2년 연속 NL 사이영상을 휩쓸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2018년에는 역대 최소 10승 사이영상 수상자가 될 만큼 투구 내용이 압도적이었다. 2019년에는 NL 평균자책점 1위였던 LA 다저스 류현진을 제쳤다. 당시 디그롬은 평균자책점은 2위였지만 탈삼진 1위(255개)로 WAR 7.2를 기록했다. 류현진(5.1)보다 더 좋은 WAR로 사이영상 투표에서 1위표 30장 중 29장을 휩쓸었다. 총점 207점으로 1위표 1장 포함 88점을 받은 류현진을 제쳤다.
[사진] 텍사스 제이콥 디그롬. ⓒGettyimages(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고 시속 102.2마일(164.5km)을 던지는 파이어볼러이면서도 커맨드와 스태미너 모두 뛰어난 디그롬은 ‘지구 최강 투수’라고 불릴 만큼 메이저리그 최고로 인정받았다. 2021년부터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리며 ‘유리몸’ 꼬리표가 따라붙었지만 2022년을 마친 뒤에 5년 1억8500만 달러에 텍사스와 계약하며 FA 대박을 쳤다.
그러나 결국 부상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2023년 4월까지 6경기를 던지고 난 뒤 팔꿈치 염증으로 부상자 명단에 올랐고, 복귀 시도 과정에서 팔꿈치 인대 손상이 발견되면서 6월초 토미 존 수술로 시즌 아웃됐다. 당시 디그롬은 인터뷰 중 “실망스럽다”고 절망감을 드러내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렇게 1년 3개월 동안 재활을 했고, 지난해 9월 빅리그 마운드에 돌아왔다. 3경기를 던지며 예열을 마치고 올 시즌을 맞이한 디그롬은 “정말 흥분된다. 터널의 끝을 지나 크리스마스 아침을 맞이하는 것 같다”고 설레는 마음을 드러냈는데 그 이유를 실력으로 보여주고 있다. 3~4월(2.73), 5월(2.08), 6월(1.41) 갈수록 평균자책점이 낮아지고 있다. 2019년 사이영상 레이스에서 류현진을 역전했던 그 뒷심이라면 올해도 뒤집기가 불가능하지 않다. FA 먹튀 혹평을 잠재운 지구 최강 투수의 부활이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