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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진국 함정’의 경제학자, 중산층 팽창 낙관하는 까닭[BOOK]

중앙일보

2025.06.26 22:00 2025.06.26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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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중산층 연대기
호미 카라스 지음
배동근 옮김
아르테

“중위소득이라는 건 없다. 양 끝 중 어느 쪽인지만 중요할 뿐이다. 이제 중산층은 없다. 완전히 사라지고 있다.”
닷컴 버블 시대의 황제 중 하나인 마크 앤드리슨이 2012년 TV에서 한 말이다. 중간이 없다는 건 다른 건 다 괜찮다는 게 전혀 아니다. 몇 명 빼고는 모두 가난해질 거라는 뜻, 다시 말해 체제에 미래가 없다는 뜻이다. 이런 사형선고는 이미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예컨대 듣기 거북한 얘기를 하는 데 모두가 슬슬 겁이 없어진다는 느낌이다.
 지난 22일 '세계 폭스바겐의 날'을 맞아 스리랑카 콜롬보에 주차된 폭스바겐 비틀 사이에 한 아이가 서 있다. 비틀은 1938년 독일 아돌프 히틀러가 '인민의 차' 생산을 지시해 창립된 폭스바겐의 대표작이다. 중산층의 번영을 상징하며 한 세기 가까이 사랑받다가 2019년 단종됐다. AFP=연합뉴스
『중산층 연대기』는 정확히 반대되는 주장을 펼친다. 중산층은 사라지기는커녕 대폭 늘어나는 중이다. 저자 호미 카라스(1954~)는 말레이시아 태생의 영국 경제학자이다. 카라스라는 이름이 낯설더라도 ‘중진국 함정’이라는 말은 대개 익숙할 것이다. 빈곤국이 저임금 노동을 투입하여 중진국까지는 올라가지만, 고차원의 기술이 없어 그 이상 올라가지 못하는 현상을 뜻한다. 2007년 이 용어를 만들어 낸 사람이 카라스이다.
19세기 초 세계 인구의 1%인 1천만 명이 중산층이었다. 지금은 500배쯤 늘었다. 지구인의 절반이 중산층이다. 매년 1억 명의 아시아인들이 이 대열에 합류한다. 저자에 따르면 한국은 이미 인구의 90%가 중산층이다. 기준은 간단하다. 1인당 하루 12~120달러를 지출하면 중산층이다. 4인 가족이면 한 달에 200만~2000만원 규모이다.
왜 지출이 기준일까? 소득은 변동폭이 크지만 지출은 거의 고정적이기 때문이다. 왜 하한선이 12달러일까? 이 정도를 지출하던 가정은 장기 경기 침체에도 90% 이상이 빈곤층으로 추락하지 않고 버텼다는 남미의 데이터가 있다. 저자에 따르면 19세기 영국 정치가들은 이 하한선을 연수입 100파운드로 보았다.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놀랍게도 1인당 하루 12달러가 된다.
한옥과 고층빌딩이 공존하던 1982년 2월 서울 시내. 저자에 따르면 매년 1억명의 아시아인들이 중산층에 합류하며, 한국은 이미 인구의 90%가 중산층이다. 사진 서울기록원
저자는 ‘10억 명씩 차례로 중산층이 되는’ 다섯 번의 물결이 인류를 찾아왔다고 쓴다. 첫 번째 물결은 1830년대 산업혁명과 함께 유럽과 북미에 왔다. 두 번째 물결은 동아시아와 동유럽에 왔다. 한국도 포함된다. 세 번째는 중국, 네 번째는 인도에 왔다. 2022년에 중산층은 40억 명을 돌파했다고 저자는 계산한다. 여기까지 200년이 걸렸다. 다섯 번째 물결은 진행 중이다. 중산층의 팽창은 계속될까? 저자는 낙관적이다. 중산층은 늘어날 것이고 또 늘어나야만 한다. 기후 위기 등 지구적 과제의 해결이 그들에게 달렸기 때문이다.
2007년 중진국 함정론을 말했던 저자가 지금 이 책에서 낙관론을 말하는 건 큰 변화로 보인다. 둘 사이에는 중국의 성공이라는 현실이 있다. 그것이 없었다면 인도의 네 번째 물결도 없고, 사실 이 책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예는 저자에게 모순적이다. 중산층 만들기에 가장 인상적인 성과를 내고 있지만, 그 성과는 저자가 중산층과 연결하고 싶어 하는 가치들(사회적 연대, 정치적 각성)을 공산당이 회피한 채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1989년 명동상가를 되살리고 새로운 관광명소로 만들기 위한 명동축제가 열렸다. 명동상가번영회 주관의 행사에서 퍼레이드가 펼쳐졌다. 사진 서울기록원
『중산층 연대기』는 너무나 거시적이어서 신선한 글로벌 자본주의 변호론이다. 이처럼 단기간에 그 많은 인류를 중산층으로 만든 체제는 없었다. 알다시피 가난에서 벗어나 중산층이 된다는 건 멋진 일이다.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비판을 늘 들어왔지만, 저자는 환경 문제 같은 도전도 결국 이 체제의 자녀인 중산층만이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중산층에게 합리성과 도덕을 기대한 막스 베버 이래의 사회과학 전통을 저자도 잇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얘기가 미국 러스트벨트나 파리 교외의 분노한 사람들을 달래기는 어렵다. 그러기 위해 쓴 책도 아니다. 그러나 첫 문장, “이 책을 보고 있는 당신은 글로벌 중산층이고 행복할 가능성이 높다”처럼, 보통 잘 말하지는 않지만 명백한 이야기를 할 필요도 있는 법이다.
김영준 전 열린책들 편집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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