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직해병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들여다보고 있는 특검팀이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의 항명 혐의 항소심 재판을 방청했다. 본래 증인신문이 예정된 김계환 전 사령관의 진술을 들어보고 향후 수사 방향을 논의하겠다는 취지였으나 이날 김 전 사령관은 출석하지 않았다. 이른바 ‘VIP(대통령) 격노설’의 키맨으로 꼽히는 김 전 사령관의 신문이 다음 달 25일로 미뤄진 가운데 특검팀은 박 대령 항소심 이첩을 군검찰에 요구할지 검토할 계획이다.
27일 서울고법 형사4-1부(부장 지영난 권혁중 황진구)는 상관명예훼손 등 혐의를 받는 박 대령의 2차 공판을 약 8분 만에 종료했다. 김 전 사령관이 전날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며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사유서에 따르면 (김 전 사령관은)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라서 다음 달 말쯤 증인에 대한 조사 기일이 잡히면 그때 출석해 증언하겠다고 했다”고 밝혔다. 이어 “본인이 출석 의사를 밝히고 있기 때문에 (김 전 사령관) 증인신문 기일은 7월 25일 오후 2시로 변경하겠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다음 달 11일 열리는 3차 공판에선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과 이호종 전 해병대사령부 참모장에 대한 증인신문을 진행하기로 했다.
이날 박 대령 항소심을 지켜보기 위해 방청석에 자리했던 순직해병 특검팀 특별검사보(특검보) 4명(류관석·이금규·김숙정·정민영)은 허탈해하며 발길을 돌렸다. 재판부가 특검보들을 향해 “항소심 진행 관련 의견이 있으면 말해달라”고 하자 류 특검보는 자리에서 일어나 “현 단계에서는 구체적으로 드릴 말씀이 없다. 추후 의견이 있으면 절차를 밟아서 드리겠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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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계환 “VIP 격노설 모른다”→“답변 못 한다”
김 전 사령관은 박 대령에게 이른바 ‘VIP(대통령) 격노설’을 전달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박 대령에 따르면 김 전 사령관은 채 해병 사건 ‘이첩 보류’ 지시가 있었던 2023년 7월 31일 박 대령에게 “VIP가 ‘이런 일로 사단장을 처벌하면 대한민국에서 누가 사단장을 하느냐’며 국방 관련 이번보다 격노한 적이 없다고 한다”고 말했다. 박 대령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김 전 사령관의 진술이 수사외압 의혹과 관련한 결정적 증언이 될 수 있는 셈이다.
김 전 사령관은 줄곧 VIP 격노설에 대해 부인하면서도 여지를 남겨왔다. 그는 채 해병 사망 사건이 발생한 같은 해 10월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 “(VIP 격노설을 전한) 그런 사실이 없고 박 대령의 주장일 뿐”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2월 박 대령 1심 재판 증인으로 출석한 자리에서도 “대통령이 장관에게 ‘이런 일로 사단장까지 처벌하냐’고 질책했고 국방 관련해 이렇게까지 격노한 적이 없다는 말을 (박 대령에게) 한 사실이 있느냐”는 재판장의 질문에 “그런 사실이 없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지난해 5월 공수차가 이른바 ‘김계환 녹취록’을 확보하면서 김 전 사령관의 진술에도 미묘한 변화가 생겼다. 공수처가 김 전 사령관의 휴대전화를 포렌식해 복원한 녹음 파일에서 그가 한 해병대 간부와 전화로 VIP 격노설에 관해 이야기한 내용이 나온 것이다. 한 달 뒤 ‘해병대 특검법 입법청문회’에서 김 전 사령관은 “(VIP 격노설에 대해) 수사 중인 사안이므로 답변할 수 없다”고 입장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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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검, 30일 인력 파견·기록 이첩 마무리
특검은 본격적으로 수사가 시작되면 김 전 사령관을 소환해 조사한단 방침이다. 특검 관계자는 “김 전 사령관이 수사기록 이첩 보류 명령을 내린 핵심 당사자인 만큼 불러 조사할 예정”이라며 “아직 일정은 정해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박 대령 항명 사건 이첩과 관련해선 “다음 증인신문 기일까지 기다릴지, 이첩 요구를 할지는 더 논의해보겠다”고 밝혔다.
한편 특검은 오는 30일까지 공수처·국방부·검찰 등 관계기관의 인력 파견과 함께 기록을 이첩받아 수사 준비를 마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