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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구 분식' 김밥 두고 지자체마다 축제 벌이는 이유 [비크닉]

중앙일보

2025.06.27 22:00 2025.06.27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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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트렌드
트렌드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욕망과 가치를 반영합니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의 모호함을 밝히는 한줄기 단서가 되기도 하고요. 비크닉이 흘러가는 유행 속에서 의미 있는 트렌드를 건져 올립니다. 비즈니스적 관점은 물론, 나아가 삶의 운용에 있어 유의미한 ‘인사이트’를 전합니다.
지난 21일 경기도 수원컨벤션센터에선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 ‘흑백요리사’를 연상케 하는 치열한 대결이 펼쳐졌습니다. 참가자들이 목숨 건 대상은 김밥 한 줄. 행사는 경기도와 도농문화콘텐츠연구회가 주최·주관한 ‘경기미 김밥 페스타’의 메인 이벤트였던 ‘전국김밥경연대회’로, 전국 김밥 장인 107개 팀이 참가해 최종 30개 팀이 최고의 김밥 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인 겁니다. 3시간 동안 김밥을 만들었는데, 마지막 1분까지도 손을 놓지 못하는 긴장감 넘치는 장면이 이어졌어요. 이들이 만든 것은 우리가 흔히 아는 김밥 아니라 각기 다른 이야기와 아이디어가 담긴, 살면서 듣도 보도 못한 특별한 한 줄이었죠.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린 이번 행사에는 한국인의 김밥 사랑을 증명하듯 오픈 한 시간 만에 3000여 명이 모였다고 해요.
경기미 김밥 페스타에서 열린 '전국김밥경연대회'. 서혜빈 기자
재미있는 사실은 이런 김밥 축제가 경기도에서만 열린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지난해 10월엔 ‘김천김밥축제’가, 같은 해 11월엔 ‘전남 세계 김밥 페스티벌’가 열렸어요.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김밥 축제 전쟁 중인 겁니다. 오늘 비크닉에서는 요즘 지방자치단체들이 하나같이 김밥에 주목하는 이유를 알아보려고 해요.
전국김밥경연대회에서 1등한 '경기미 저속노화 샐러드 김밥'. 서혜빈 기자
쌀 소비 고민에서 시작…시군별 특화 품종 홍보 나서
‘경기미 김밥 페스타’가 내세운 중요한 키워드는 ‘쌀’이었습니다. 행사장에선 소상공인들이 만든 특별한 김밥을 맛볼 수 있었는데, 공통점은 모두 가지각색의 경기도 쌀로 만들었다는 거예요. “쌀알이 굵고 단단한 ‘여주쌀’을 선택했다”는 임훈 성수김밥 대표부터 “고소하고 쫀득한 식감을 내는 ‘수향미’를 썼다”는 신소영 마하키친 대표도 있었죠. 이들은 행사 준비를 위해 최소 대여섯 가지 경기도 쌀을 시식한 뒤 김밥에 어울리는 최고의 쌀을 찾아냈다고 해요. 대중의 시각으로 김밥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경기도 쌀을 선정하는 체험 행사도 있었어요. 밥을 김에만 싸서 맛보는 방식으로 진행됐는데, 찰지고 쫀득한 식감을 가진 연천의 ‘연진미’가 선택받았죠.
경기미 김밥 페스타에서 열린 쌀 투표. 서혜빈 기자
다채로운 김밥 종류만큼 탄생 이야기도 다양했어요. 당뇨 진단을 받은 어머니를 위해 만들었다는 ‘표고장비건말이’부터 식사가 아닌 디저트 같은 느낌을 주고 싶어 고안한 ‘콩가루 김밥’까지, 김밥 하나하나에 개성 넘치는 사연이 담겼어요. 행사장 곳곳에서 쌀을 매력적인 콘텐트로 풀어낸 실험들을 발견할 수 있었죠.
경기도가 김밥이라는 형식을 빌려 쌀을 홍보하려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박종민 경기도 농수산생명과학국장은 “쌀 소비가 줄고 있는 상황에서 임금님이 드셨던 쌀이라는 역사적 스토리를 통해 경기미의 프리미엄 이미지를 드러내고자 기획했다”고 말했습니다.
경기미 김밥 페스타에 소개된 다양한 김밥들. 서혜빈 기자
경기도는 이미 수년간 쌀을 홍보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해왔습니다. ‘경기미 디저트 페스타’와 같은 행사를 통해 쌀을 베이킹이나 디저트에 접목하는 실험을 했죠. 최근엔 더 나아가 쌀을 통해 경기도 31개 시군 각각의 특색과 지역을 알리는 방향으로 홍보 전략을 바꿨죠. 배소영 농식품유통과장은 “경기미를 알리는 동시에 기초자치단체별 특화 품종을 부각해 기초 지자체를 브랜딩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경기미 김밥 페스타에서 전시된 쌀. 서혜빈 기자
전남은 ‘김’, 김천은 ‘유머’...김밥에 지역을 입히다
같은 김밥이지만 지자체가 김밥을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는 제각각입니다. ‘전남 세계 김밥 페스티벌’은 김밥을 통해 지역 특산물인 ‘김’을 알리려고 했습니다. 국내 김 생산의 78%가 전라남도에서 나오고, 김은 국내 수산물 수출의 30%를 차지하는 대표적인 K-푸드거든요. 김영심 전남 수산유통팀장은 “김밥을 매개로 김을 전 세계에 알리려는 의도”라고 행사 취지를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지난해 열린 축제는 김과 수산가공품 81종을 소개하면서 김밥을 넘어선 종합 수산 콘텐트로 주목받았습니다. 올 10월에도 목포에서 두 번째 행사를 열 계획이라고 해요.
전남세계김밥축제 현장. 전남도청
경상북도 김천은 전혀 다른 접근을 택했습니다. 이봉근 김천시청 관광마케팅팀장은 “김밥 프랜차이즈 ‘김밥천국’을 줄여 ‘김천’이라 부르는 젊은 세대의 언어유희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김밥 축제를 준비했다”고 했죠. 김천시 이미지 조사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키워드가 ‘김밥천국’이었거든요. 지역소멸 위기와 관광객 유치 어려움을 겪는 김천은 김밥을 통해 도시의 활력을 찾는 체험형 축제를 기획했고, 13만 명이 사는 중소도시에 관람객 10만 명을 끌어모으며 흥행에 성공했죠.

속 재료 따라 무한 변형…지역·문화 담은 유연한 소재
지자체들이 김밥에 열을 올리는 또 하나의 이유는 김밥이 지금 세계적인 음식으로 주목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김밥은 한국식 패스트푸드로, 빠르고 간편하면서도 건강하게 먹을 수 있다는 이미지 덕분에 해외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김밥이 등장하고, 미국 마트에 냉동 김밥이 진출하는 등 김밥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 콘텐트로도 떠올랐죠. 5년간 전국 김밥집을 돌며 김밥의 다양한 매력을 알리는 정다현 김밥 큐레이터는 “김밥이 국내·외에서 문화적 상징으로 소비되고 있기 때문에 지자체도 그 흐름을 읽고 김밥으로 지역 브랜딩을 시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어요.
 김천김밥축제 공연 현장. 김천시청
김밥은 속 재료에 따라 무한한 변형이 가능하다는 매력도 있습니다. 비건 김밥, 고급화된 프리미엄 김밥, 지역 특산물 김밥 등 다양한 트렌드와 결합해 마케팅 활용도도 높죠. 유지상 음식 칼럼니스트는 “김밥은 대중적인 음식이면서도 속 재료에 따라 다양하게 발전할 수 있어 지자체의 특산물을 알리는 활용도 높은 마케팅 소재”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김밥은 단순한 먹거리를 넘어 누가,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지역적 특성을 드러내는 유연한 매개체로 해석됩니다. 쌀이든, 김이든, 혹은 다른 재료든, 각 지자체는 김밥이라는 틀 속에 자신들의 정체성과 미래를 담아내고 있죠. 이제 하나의 문화 콘텐트가 된 김밥, 이 한 줄에 또 어떤 도시의 미래가 담길지, 앞으로 또 다른 김밥 이야기가 기대되는 이유입니다.



서혜빈([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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