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현장에 가장 먼저 달려가는 사람, 소방관. 그들이 119 구급차를 몰며 바라본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이 시리즈를 연재하는 백경 소방관은 구급대원으로 9년째 일하고 있습니다. 출동 현장에서 너무 많은 죽음을 보아서일까요. 그는 매일 유서를 쓰고 잠이 듭니다. 그가 매일 마주하는 삶과 죽음, 절망과 희망의 이야기. 자세한 내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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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자 동네건 가난한 동네건 꽃은 핀다
“요즘 초딩들은 개근상 받으면 ‘개근 거지’라고 부른다더라.”
“개근이 왜 거지야?”
“학기 중에 놀러 갈 형편이 안 된다는 말을 그딴 식으로 하는 거지.”
“말도 안 돼.”
“‘빌거’는 무슨 말인 줄 알아?”
“그건 또 뭔데?”
“빌라 사는 거지.”
친한 친구와 점심 먹던 중에 나온 이야기였다. 친구는 몇 년 전 이혼을 했고, 갓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들을 홀로 키우고 있었다. 최근에는 조금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 원래 살던 낡고 좁은 빌라에서 10년도 채 안 된 34평대 아파트로 이사했다.
차도 그랜저로 바꿨다. 어릴 때만 해도 그랜저는 성공한 사람이 타는 차였다. 친구의 머릿속에도 그런 환상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내 눈엔 집과 차를 바꾸는 일이, 같은 반 친구에게 주저 없이 ‘거지’ 딱지를 붙이는 작은 악마들로부터 귀한 아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로 느껴졌다.
개근 거지.
빌라 거지.
배려 없고 잔인한 이런 말들은
최초에 누구의 뇌 주름을 타고
세상 밖으로 나오는 걸까.
# 여성이 내뱉은 한마디, 나는 부끄러웠다
얼마 전 출동했던 한 사건이 떠올랐다.
출동 장소는 빌라 3층,
사람이 쓰러져 있다는 신고였다.
듣자마자 아찔했다.
엘리베이터 없는 건물에서
환자를 구급차로 옮기려면
들것에 싣거나 업어서 계단을
내려와야 하기 때문이었다.
소생 장비를 챙겨 올라갔다.
숨이 찼지만 태연한 표정을 유지했다.
출입문을 열었는데
예상 밖의 상황이 펼쳐졌다.
벽에 기대어 앉아 있는 남자와
곁에서 눈물범벅이 돼
자릴 지키고 있는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남자는 앞으로 고꾸라졌는지
입과 코에서 연신 피를 흘렸고
부자연스럽게 몸을 떨었다.
바닥엔 박살 난 안경이 나뒹굴고 있었다.
“관계가 어떻게 되세요?”
“옆집 사는 사람이에요.”
이웃집 남자는 여자를 만날 적마다
꼬박꼬박 인사를 했다.
다리를 절며 쭈뼛쭈뼛 다가가
“안녕하세요” 하고 주워섬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