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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현옥의 시선] ‘6·27 부동산 대책’ 감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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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29 08:18 2025.06.29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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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현옥 논설위원
부동산과의 전쟁이 다시 시작됐다. 이번엔 세금 대신 대출로 때렸다.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 들어가 가격을 밀어 올리는 돈의 압력을 낮추겠다는 것이다. 가계대출 총량을 줄이고, 정책대출 총량도 감축하며 대출 문턱을 높였다. 가장 강력한 한방은 수도권과 규제지역의 주택담보대출(주담대) 최대한도를 6억원으로 못 박은 것이다. 소득과 집값에 상관없이 같은 기준이 적용된다. 단순해서 세다.

게다가 전격적이다. 대책을 발표한 다음날(28일)부터 바로 시행했다. 금융당국의 기습작전 같은 대책에 시장은 무방비 상태로 당했다. 이 나라에서 부동산 정책의 예측 가능성은 언감생심이 된 지 오래지만, 시장에 플레이어로 뛰어들어있던 누군가는 뒤통수를 세게 맞았다. 투기꾼이든 실수요자든 가리지 않는 무딘 칼에 충격은 상당하다.


서울 강남 3구와 한강 벨트를 따라 과열되는 시장을 진정시킬 필요는 있다. 하지만 ‘6·27 부동산 대책’의 초강력 대출 규제는 정부 마음대로 대출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것을 천명했다. 기준 따위는 내동댕이쳤다. 소득으로 빚을 갚을 수 있는지 능력을 따지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나, 금리 변동 위험까지 감안해서 대출 한도를 정하는 스트레스 DSR도 의미가 없어졌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정부가 정한 기준(6억원)이 시장의 법이자 진리가 된 것이다. ‘갚을 수 있어도 못 빌려!’다.


‘주담대 6억원 한도’는 서울 아파트값 상승을 주도하는 고소득자의 ‘초영끌’ 매수를 막기 위해서라는 게 정부의 변이다. 연 소득 2억원 상당의 고소득자는 DSR 40% 규제를 받더라도 주담대로 14억원을 빌릴 수 있었던 만큼 이런 과도한 레버리지를 막겠다는 것이다. 가계부채가 급등하는 상황에서 어느 정도는 필요한 조치일 수 있다.


하지만 근거는 옹색하다. 금융당국자는 “30년 만기로 6억원을 빌릴 경우 평균적으로 월 300만원에 이르는 원리금을 갚아야 한다”며 “감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부채를 지게 하자는 것이 기본 틀”이라고 했다. DSR을 적용했을 때 감내할 수 있는 부채의 기준이 하루아침에 갑자기 14억원에서 6억원으로 쪼그라드는 건 무슨 조화 속인지 모를 판이다.


수도권 주담대 한도 6억원 초강수
‘초영끌’ 막으려 대출 기준 무력화
풍선효과와 전세가격 상승 우려도
치솟는 부동산값을 잡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할지라도 주담대 한도 6억원은 또 다른 풍선효과와 부작용을 낳을 것이다. 정치인처럼 경조사나 출판기념회로 수억 원대의 현금을 당길 수 없는 일반인의 실정을 감안하면 초고가 아파트는 현금 부자들의 리그가 될 수밖에 없다. 7억원 이상의 현금을 손에 쥐고 있어야 서울 아파트(평균 매매가 13억 4543만원)를 살 수 있다 보니 소득이 낮지 않더라도 모아놓은 돈이 적은 젊은 층은 앞으로 서울 부동산 시장 진입이 어려워질 것이다.

고가의 아파트 매입이 사실상 불가능해지면서 6억원 미만의 대출을 받아서 살 수 있는 가격대의 아파트로 수요가 옮겨가며 이들 부동산 가격을 끌어올리는 풍선효과가 생길 가능성이 크다. 대출이 가능한 정도까지 집값이 오르는 ‘키 맞추기 현상’도 예상된다. 또한 대출 시 6개월 내 전입 의무를 부과하면서 전·월세 매물이 줄어 매매가를 밀어 올리는 부작용도 낳을 수 있다.


이번 대책에서는 가계 대출 급증을 이끄는 주범으로 몰렸던 정책 대출에도 손을 댔다. 대출 한도를 20% 줄인 것이다. 조정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예고도 없이 상대적으로 자산이 적은 젊은 층과 서민의 주거 사다리 2~3계단을 없애 버린 모양새다.

강력한 대출 규제로 달아오른 부동산 시장을 일시적으로 식힐 수는 있다. 하지만 그동안의 학습효과로 ‘6·27 대책’은 언제든 정부가 대출을 더 줄일 수 있고, 언제든 더 강력한 규제를 내놓을 수 있다는 신호로 읽힐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더 좁아지는 문을 비집고 더 높아지는 문턱을 넘기 위한 추격 매수와 막차 타기 수요가 거세질 수도 있다.


추경 등 막대한 유동성 공급이 예상된 상황에서 부동산 시장을 잡기 위해 대출 규제와 같은 금융 대책을 동원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꼬일 대로 꼬인 부동산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보유 주택 수가 아닌 보유 주택의 공시가격을 합산해 세금을 부과하고, 재건축·재개발 사업 추진을 위해 초과이익환수제 등을 완화하는 등 전향적인 정책 검토도 필요하다.

불안에 휩싸인 수요가 시장을 뒤흔들게 하지 않으려면 정부가 원하는 바가 아닌 시장이 원하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 시장이 원하는 곳에 주택을 공급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찍어 누르면 더 세게 튀어 오를 뿐이다. 과거의 교훈을 잊어버리면 ‘문재인 부동산 시즌 2’는 피할 수 없다.



하현옥([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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