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이후 80년간 대한민국은 기적의 역사였다. 경제 발전과 민주화를 이뤄낸 한국은 식민지배를 했던 일본의 국민소득을 앞지르고 일본과 맞먹는 수출 규모를 가진 선진국으로 부상했다. 인구 절반 이상인 2860만명이 지난해 해외여행에 나섰다. 지난 80년간 한국은 지속해서 성장했다. 그러나 지금이 부(富)의 절정이고 성장은커녕 추락할 것이라는 ‘코리아 피크(Korea Peak)’의 경고가 나온다. 우리 아이들이 부모보다 못 살게 될 희망 없는 나라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중국 위협에 직면한 한국 제조업
미국의 중국 견제가 기회 될 수도
북한 억제도 한·미동맹으로 가능
계엄과 스캔들로 점철된 대선 기간, 대한민국은 한국전쟁 이래 최악의 대외환경에 직면했다. 우리의 번영과 평화를 지켜온 국제사회의 작동 원리가 근본부터 바뀌고 있다. 일본은 현 대외환경을 국난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놀랍게도 우리는 위기감이 없다.
한국이 중국과 일본, 러시아 등 위협적인 이웃 강대국의 존재를 잊고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게 한 것은 전후 미국이 만든 자유주의 국제질서다. 세계 시장에 자유롭게 접근하면서 번영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질서를 만든 장본인이 관세 폭탄으로 자유무역의 국제질서를 붕괴시키려 한다.
현 질서의 최대 수혜자인 중국은 대대적인 군비 확장과 함께 중화질서 부활을 노리는 패권 경쟁에 나서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패권을 지키기 위한 혈전에 나섰다. 러시아도 제국의 부활을 위해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고 트럼프는 이를 규탄하는 유엔(UN) 결의안조차 찬성하지 않았다. 강대국의 자국 우선주의 앞에 정의와 국제법은 작동하지 않고 약소국은 전전긍긍이다. 우리가 국권을 상실했던 구한말과 같은 약육강식의 강대국 정치가 부활하고 있다.
‘코리아 피크’ 경고는 제조업과 기술에 있어 경쟁력 상실에도 기인한다. 우리 제조업은 중국의 강력한 위협에 직면했다. 2015년 중국 리커창 총리가 10년 내 세계 선진 공업국으로 부상하겠다는 ‘중국제조 2025’를 발표했을 때 우리는 반신반의했다. 10개 분야 중 4개 분야에서 세계 1위로 부상했고 사실상 반도체를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우리 제조업을 추월했다. 중국이 우리의 최대 수출시장이기는커녕 세계시장은 물론 우리 시장에도 과잉생산된 중국 제품이 덤핑으로 물밀 듯이 들어오고 있다. 미래를 좌우할 첨단기술은 더 암울하다. 인공지능(AI)과 양자컴퓨터, 로봇, 배터리 모두 중국에 밀리고 있다. ‘안보는 미국이지만 경제는 중국’이라는 안미경중(安美經中)은 과거의 말이다.
코리아 피크의 갈림길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성장을 이어갈 수 있을까.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무너지고 있는 상황은 우리에게 위기지만, 첨단기술을 차단하고 공급망을 재편하는 그의 대중 강경 정책은 천재일우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우리 주력산업은 세계시장에서 중국의 물량 공세에 밀리고 있었다.
미국의 대중 산업 견제는 우리 기업이 잃고 있는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는 천금과 같은 시간을 제공한다. 첨단기술에서 초격차를 만들기 위해 초당적인 협력과 함께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트럼프가 만든 이 기회를 놓치면 우리는 코리아 피크에서 중화질서의 변방으로 전락할 것이다. 트럼프가 꿈꾸는 미국의 부활은 반도체와 조선, 원자력, 에너지 등에서 동맹국 한국의 도움이 필요하다. 관세 등 현안을 조속히 매듭지어 한·미 간 불확실성을 없애고 긴밀한 협력체제를 가동해야 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시작된 전쟁은 중동에서 타오르고 미·중 대결하에 대만과 한반도로 비화할 수 있다. 북한은 북·러 군사동맹을 부활하고 실전 경험과 함께 첨단 군사장비를 얻어내고 있다. 핵무장한 북한을 억제하는 방법은 현실적으로 굳건한 한·미동맹 외에 없다. 지정학 격변기에 다시 균형외교와 중재자를 운운한다면 우리는 철저히 외톨이가 될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외교안보 공약대로 포괄적 한·미전략동맹과 한·미·일 협력을 굳건히 해야 하며,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유럽·호주 등 민주진영과의 연대도 강화해야 할 것이다. 민주 진영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존재가 돼야만, 중국이 우리를 무시하지 않을 것이다. 다소 껄끄럽더라도 이 대통령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담에 참석해 목소리를 내는 것이 좋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