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왕실 미술은 아카데미즘을 선도하면서 외부 공방 장인까지 아우르는, 당대 최고 기술의 산물이었다. 또한 외교사절 등에 의한 선물을 통해 국제 교류 관계를 알 수 있단 점에서 역사적으로 탐구돼야 할 게 많다.”(유키오 리핏 교수)
한국·중국·일본·베트남 등 동아시아 왕조 국가에서 꽃피웠던 왕실 미술의 역사와 특징을 비교·탐구해보는 국제학술의 장이 펼쳐졌다. 국립고궁박물관 개관 20주년을 맞아 지난 27~28일 박물관에서 열린 ‘동아시아 왕실 문화와 미술’ 국제학술대회다. 국립고궁박물관과 한국미술사학회가 공동 주최하고 하버드대 옌칭연구소가 후원한 학술대회에 앞서, 18명 참석 학자들의 주요한 인식을 공유하는 간담회가 지난 26일 열렸다.
간담회에는 조선 궁중회화 연구 권위자인 박정혜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중국 및 한국 회화사 전문 연구자 이타쿠라 마사아키(板倉聖哲) 도쿄대 동양문화연구소 교수, 일본 쇼소인(正倉院·정창원) 관련 발표를 한 유키오 리핏 하버드대 교수(미술사·건축사), 위페이친(余佩瑾) 타이페이고궁박물원(대만고궁박물관) 부원장 등 4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동아시아 왕실 문화’라는 카테고리로 처음으로 열리는 이번 학술대회가 관련 연구를 급진전시킬 중요한 계기라고 입을 모았다.
왕실 미술은 무엇보다 권력자와의 관계에서 중시된다. 이타쿠라 교수는 “고대 왕권이 애호한 문물은 정통성을 상징했고 숨겨짐으로써 권위를 나타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제한된 장소에서 공개되기 시작해 오늘날엔 누구나 향유할 수 있다”면서 “예컨대 서화 작품에서도 (창작자의) 개성보단 시대의 미의식을 분석할 수 있단 점에서 중요하다”고 했다.
위페이친 부원장은 “대만고궁박물관 소장품의 90%는 황실의 것이었고, 다시 말해 남은 유물과 황실과의 관계는 떼려야 뗄 수 없다”면서 “예컨대 도자 유물을 통해 12세기 동아시아의 예술 교류 등을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리핏 교수는 756년에 봉헌돼 가장 오래된 동아시아 ‘왕실 소장품’으로 꼽히는 쇼소인 보물이 실크로드 교역 외에도 국가 간 조공 등 복합적인 역사를 드러낸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쇼소인 보물에 포함된 신라 악기와 관련해 “당시에 음악은 정치외교에서 매우 중요했고 악기만이 아니라 악공도 각국 궁정 사이를 오갔는데, 그러면서 각자 개별적으로 발전해갔다”고 설명했다.
박정혜 교수는 “조선은 500년간 단일 왕조를 유지한, 유례가 거의 없는 국가로서 차별화된 궁중미술을 낳았다”면서 “특히 18세기 이후 도화서를 중심으로 체계적으로 궁중회화가 생산·관리됐고, 화려한 궁중에 어울리는 장식화 등이 독특한 미감을 발전시켰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중·일 궁중회화의 특수성·독자성에 대한 연구가 이제 시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참석 학자들은 한국 왕실미술이 더 알려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리핏 교수는 “고려 왕실이 봉헌·발원한 14세기 불교 미술은 규모와 솜씨가 엄청나다. 인류 전체 문화유산으로서 큰 가치가 있다”고 했다. 이타쿠라 교수도 “회화 발전에 있어 (한·중·일) 상호 영향이 더 탐색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