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출범 이후 이재명 대통령이 야당과의 협치를 강조하고 있지만 여야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국민의힘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들은 어제 국회 기자회견에서 “더불어민주당 한병도 예결위원장이 선출되자마자 야당의 의견을 배제한 채 추경 심사 일정을 정하더니, 하루만 질의한 뒤 바로 의결하겠다고 한다”고 반발했다. 추경안 처리가 아무리 시급하더라도 졸속 심사가 괜찮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관례대로 간사부터 뽑고 일정을 잡았어야 무리가 없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다수 의석으로 밀어붙이는 데 주저함이 없다.
여당의 일방 독주는 국회 상임위원장 선출에서도 드러났다. 지난주 국회 본회의에서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보이콧한 가운데 법제사법위원장과 예결위원장 등 4개 상임위원장 선출 투표를 강행했고, 모두 민주당 몫으로 채웠다. 국민의힘이 예결위원장을 양보하는 대신 자신들이 요구하는 법사위원장 등을 추후 논의하자고 했으나 소용없었다. 법사위원장은 견제와 균형을 기하자는 차원에서 16대 국회부터 19대 국회까지 야당이 맡는 게 관행이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총선에서 과반을 확보한 여당이 전반기 법사위원장을 맡은 적이 있었지만, 이후 다시 관례를 따라왔다. 그런데도 여당이 된 민주당이 법사위원장까지 차지했으니, 거대 여당의 독주를 막을 방법이 없어졌다는 야당의 비판도 무리는 아니다.
민주당의 이런 모습은 이 대통령의 협치 행보와도 배치된다. 이 대통령은 취임 당일 국회의장 및 정당 대표들과 오찬을 함께한 데 이어 지난 22일 여야 지도부를 초청해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순방 결과를 설명했다. 26일 국회 추경 시정연설에서 협치를 호소한 뒤에는 야당 의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기도 했다. 악수의 온기가 가시기도 전에 여당이 상임위원장 일방 선출을 강행하면서 대통령의 협치 강조 취지는 무색해지고 말았다. 대통령은 협치를 말하고 여당은 독주하는 여권의 양상이 야당을 ‘어르고 달래는’ 역할 분담이라는 비판마저 나온다.
협치는 말로 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 거대 의석을 지닌 민주당은 검찰의 기소권을 없애고 국가수사위원회 등을 설치하는 검찰개혁 법안을 비롯해 상법, 노란봉투법, 양곡법 등 논란이 있는 입법을 예고하거나 추진하고 있다. 부작용이 우려되거나 야당이 반대하는 법안들은 다양한 이해당사자의 입장을 듣기 바란다. 강성 지지층의 요구에만 호응하기보다 여야 협의 처리를 위해 최대한 노력하는 것이 협치의 길이다. 역대 정부보다 더 많이 내각에 참여한 의원들 역시 야당의 협력을 얻어내는 정치력을 발휘하기 바란다. 역대 정권에서 절제하지 못하는 권력이 결국 국민으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 여권이 되새길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