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뒤이어 청춘을 다 바친 곳인데 이제 정말 끝이다.” “여름철 갱구 앞에 서면 그렇게 시원했는데 이것도 마지막이네
…
.”
28일 오후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도계광업소 도계갱구를 찾은 광부 이기황(63)씨와 김전하(61)씨가 굳게 닫힌 갱구를 바라보며 나눈 대화다. 30년 넘게 탄광에서 일해 온 이씨는 30일이 마지막 근무다. 대한석탄공사가 운영하는 마지막 탄광인 도계광업소가 30일 문을 닫기 때문이다.
앞서 2023년 전남 화순광업소가, 지난해엔 태백 장성광업소가 각각 폐광했다. 도계광업소가 문을 닫으면 대한석탄공사가 운영하는 국·공영 탄광은 모두 사라진다. 이제 국내에 남은 탄광은 민영인 경동 상덕광업소 한 곳뿐이다.
89년 만에 폐광, 민영 1곳만 남아
1989년 도계광업소에 입사해 2023년 정년퇴직한 이씨는 같은 해 기간제 안전기사로 재취업해 현재까지 근무할 정도로 탄광에 애정이 많았다. 도계 토박이로 지난해 6월 30일에 정년퇴직한 김씨는 1년 유예기간을 채운 데다 36.3㎡(11평) 남짓한 사택이 너무 낡아 삼척 도심으로 이주를 결정했다. 그의 아버지도 광부였다. 김씨는 “입사 초엔 동료가 1000명이 넘었는데 퇴직 즈음엔 300명이 안 됐다. 광부들끼리 이러다 도계가 지도에서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씁쓸한 농담을 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라고 했다.
도계읍 지역에 탄광이 운영되기 시작된 건 1936년부터다. 삼척탄광으로 시작해 1951년 석탄공사의 도계광업소가 됐다. 당시 탄광 개발로 1935년 8만8700명이던 삼척 인구는 5년 만인 1940년에는 12만5000여명으로 늘었다. 1940년 개교한 도계국민학교(현 도계초)도 초기엔 재학생이 73명에 불과했지만, 1955년엔 1527명으로 늘어나더니 1965~1970년엔 3000명대를 유지했다. 당시 도계초는 강원도에서 가장 큰 학교였다.
하지만 정부가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을 추진하면서 도계 지역은 내리막길을 걷게 됐다. 1989년 합리화 정책 시행 첫해 도계에서 삼마, 대방, 삼보 등 3개 탄광이 문을 닫은 것을 시작으로 12개 탄광 가운데 10개가 폐광했다.
탄광이 문을 닫자 인구도 급감했다. 5만명에 가까웠던 도계읍 인구는 지난달 8925명으로 감소했다. 1989년 13만명에 이르렀던 삼척시 인구도 현재는 6만1428명으로 반 토막이 났다.
주변 상권 역시 빠르게 무너졌다. 도계역 인근에 있는 도계전두시장의 경우 현재 57개의 점포 중 5개 점포만이 문을 연 상황이다. 33년째 시장에서 장사를 해 온 김연옥(73·여)씨는 “도계가 이렇게 될지 누가 알았겠냐”며 “좌판으로 북적이던 시장은 옛말이고 젊은 사람들은 모두 도심으로 떠났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강원도에 따르면 도계광업소 폐광 시 삼척시에 미치는 경제·사회적 손실 규모는 98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대체 산업 쟁취 대한석탄공사 폐광반대 공동투쟁위원회’(공투위)는 도계광업소가 폐쇄되면 광부 등 270여명의 실업자가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또 갱내 보수업무와 경비 협력업체, 목욕탕 등 관련 업체 종사자 280여명도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여기에 마지막 하나 남은 민영 탄광인 경동 상덕광업소까지 폐광하면 경제·사회적 손실 규모는 5조6000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김광태 공투위원장은 “폐광을 주도한 정부는 탄광이 문을 닫은 이후 폐광주민들의 생존방안에 대해 아무런 확답을 주지 않고 있다”라며 “대체산업과 생존방안이 없는 폐광은 있을 수 없다. 중입자가속기 기반 의료산업 클러스터 사업의 예비타당성 조사 결과가 7월에 예정돼 있는데, 정부의 현명한 판단을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한편 대한민국 제1호 공기업인 대한석탄공사도 30일, 75년의 역사를 뒤로하고 채탄 등 주요 업무를 사실상 종료한다. 전 직원에 대한 해고 통보도 이미 이뤄졌다. 대신 석탄공사의 일부 기능은 ‘대한석탄공사법’이 폐지될 때까지 유지된다. 석탄공사는 1950년 설립된 대한민국 제1호 공기업이다. 공사 산하 마지막 탄광인 삼척시 도계광업소는 1936년 강원도 최초의 탄광으로 문을 열었고, 지금까지 총 4325만t의 석탄을 생산하며 국내 난방 연료 공급에 큰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도시가스와 신재생에너지 등이 빠르게 부상하면서 1988년 127만t이던 생산량은 지난해 7만t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강원도 “삼척시 손실 규모 9800억” 현재 석탄공사는 완전자본잠식 상태로, 부채는 2조5000억원에 달한다. 막대한 부채는 석탄공사의 퇴장조차 어렵게 하고 있다. 광해광업공단과 석탄공사의 통합 방안이 거론되기도 했지만, 현실적인 제약이 크다. 광해광업공단이 이미 8조5840억원의 부채(지난해 말 기준)를 안고 있어 석탄공사의 부채를 안고 갈 여력이 없다. 인력 문제 역시 청산 과정에서 풀어야 할 또 다른 숙제다. 석탄공사에는 현재 본사 직원 50여 명을 포함해 187명(3월 말 기준)이 남아 있다. 석탄공사 노동조합은 이 중 저연차 직원들에 대한 고용 승계를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