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민선 지방자치 부활 30주년 육동일 한국지방행정연구원장 인터뷰 지방자치는 민주주의 지키는 핵심 지역의 다양성과 자율성 존중해야 4대 권한 헌법과 법률로 보장해야 주민 정치 교육 대폭 강화도 필요
올해는 민선 지방자치가 부활한 지 30주년이 되는 해다. 지난 30년 동안 지방자치는 국민의 주인의식을 고취하고, 지역의 자율성과 정치 발전을 이끄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여전히 “반쪽의 성장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육동일 한국지방행정연구원장은 “30년이 지났지만 지방자치는 여전히 구조적, 제도적 제약에 갇혀 있다”며 “이제 지방이 권한과 책임을 갖고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육 원장과의 일문일답이다.
Q : 지방자치 부활 30주년을 어떻게 평가하나.
A : “지난 30년 동안 지방자치가 많은 갈등과 부작용도 겪었지만, 결과적으로 국민의 탁월한 선택이었고, 정치 발전의 토대가 됐다. 대통령 탄핵 등 국가적 위기 속에서도 지방정부는 흔들리지 않았고, 평화적인 정권 교체가 가능했던 것도 지방자치 덕분이었다. 이 과정에서 국민의 민주의식이 크게 성장했고, 이러한 성숙함이 대한민국이 정치적 위기를 극복하는 힘이 됐다. 지방자치는 단순한 제도를 넘어 민주주의를 지키는 핵심 축이된 셈이다.”
Q : 지방자치가 가져온 구체적인 성과는 무엇인가.
A : “2007년 수원시가 제정한 ‘화장실 조례’는 한국의 화장실 문화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이보다 1991년 청주시의 ‘정보공개 조례’는 행정의 투명성을 획기적으로 높였다. 최근에는 전남 신안군의 ‘퍼플섬’처럼 지역 고유의 문화를 살리는 성공 사례도 이어지고 있다. 이런 일들은 중앙정부가 해낼 수 없는 창의적인 성과이다. 모두 주민이 직접 뽑은 지방정부가 지역에 맞춰 고민하고 추진했기에 가능했다.”
Q : 하지만 주민들은 이런 성과를 잘 체감하지 못한다.
A : “맞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민원 서비스가 조금 더 친절해졌을 때만 지방자치의 변화를 느끼고, 본질적인 변화는 잘 체감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세 가지다. 먼저 지방자치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고, 중앙 언론이 지방의 성과를 외면하며, 정치·자치 교육이 안 됐기 때문이다. 해외에서는 학교, 교회, 정당이 정치 교육을 꾸준히 하지만 우리는 지난 30년 동안 주민들에게 지방자치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다. 언론 역시 지방의 성과는 외면하고, 비리와 비효율성만 부각해왔다. 무엇보다 정책 결정 과정에 주민이 철저히 배제돼 있다. 실생활과 동떨어진 정책이 쏟아지니 당연히 주민들의 관심과 신뢰도 낮을 수밖에 없다. 이제는 지방자치의 근본적인 반성과 함께 주민 교육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Q : 현재 지방자치제의 구조적 한계는 무엇인가.
A : “가장 큰 문제는 ‘획일적인 제도’다. 대도시, 농어촌, 도농복합도시 모두 똑같은 자치제도를 적용받고 있다. 지역 여건과 자치 역량에 맞춰 차별화해야 하는데, 지금은 마치 ‘어린아이 옷을 입은 성인’처럼 어색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이제는 자치입법권, 자치조직권, 자치행정권, 자치재정권 등 4대 권한을 헌법과 법률로 보장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중앙정부의 통제 아래 지방정부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이 구조가 계속되니 주민들의 불신도 악순환처럼 이어지고 있다.”
Q :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
A : “주민 중심, 지방 주도, 현장 중시의 지방 정치와 행정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체계를 바꿔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방분권형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재해·재난, 교육, 치안 등 국민 생활의 핵심 사안들이 모두 중앙정부에 집중돼 있지만, 사고는 지방에서 터지고 책임도 지방정부가 지고 있다. 산, 하천, 재난 관리 체계가 중앙과 지방으로 이원화돼 있어 유기적인 대응이 불가능하다. 사고가 터지면 중앙은 책임을 회피하고 지방은 결과를 떠안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이제 지방정부가 재난, 치안, 교육을 직접 관리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
Q : 지방의회와 지방선거도 신뢰를 잃고 있다.
A : “지방의회는 여전히 파행적인 의장단 선거, 외유성 해외연수, 의정비 과다 인상 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지방선거 역시 ‘3무(無) 선거’다. 지역 이슈도 없고, 지역 인물도 없고, 정책·공약 검증도 없다. 주민들은 지방보다 중앙 정치에만 주목해 투표하고, 정당은 지역과 무관한 인사를 공천한다. 책임지는 정당도 없다. 재보궐선거가 발생해도 그 비용은 결국 주민이 부담한다. 이제 ‘정당 공천 책임제’를 도입해 문제가 발생하면 정당이 비용을 부담하고, 사고 지역은 일정 기간 공천을 금지하는 등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 유능하고 헌신적인 지역 인물이 자랄 수 있다.”
Q : 지방소멸 문제도 심각하다.
A : “청년층이 빠르게 수도권으로 빠져나가면서 지역의 경제, 사회, 문화 기반이 무너지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2050년쯤 살아남을 지방자치단체가 전체의 30%도 되지 않을 수 있다.”
Q : 지방소멸 문제, 어떻게 풀어야 할까.
A : “지금도 지역소멸 대응 기금과 특별법이 마련돼 있지만, 여전히 출산 장려 같은 인구 정책에만 집중하고 있다. 이제는 관점을 바꿔야 한다. 청년들이 지방에 머무를 수 있도록 양질의 일자리, 교육·문화 기반을 확충해 ‘지방살이 경제’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단순한 예산 지원이 아니라, 지방에 실질적인 자율성과 책임을 부여하는 ‘분권형 재정 시스템’이 뒷받침돼야 한다. 무엇보다 매력적인 도시를 만드는 지역 주도의 창의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A : “우리 연구원은 올해 지방자치 개혁과 성공을 위한 10대 과제를 선정해 연구하고 있다. 주요 과제로는 ▶지방선거제도 개선 ▶교육자치와 지방자치의 협력·통합 방안 ▶지역과 주민 중심의 재해·재난 거버넌스 구축 등이 있다.”
Q : 앞으로 지방자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A : “지방자치 30년을 맞은 지금, 진정한 지방분권으로 나아가야 한다. 지방이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질 수 있도록 4대 권한을 헌법과 법률로 보장하고, 주민 교육도 대폭 확대해야 한다. 언론 역시 지방 이슈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 주길 바란다. 무엇보다 지방선거는 지역을 위한 선거가 돼야 한다. 지역 인물이, 지역 문제를 놓고, 정책으로 경쟁하는 선거로 바뀌어야 진정한 지방자치가 뿌리내릴 수 있다.”
Q : 국민주권 시대를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한 핵심 메시지가 있다면.
A : “자치분권과 균형발전 개혁은 결코 지방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민 통합과 지역 균형발전을 위한 유일한 길이다. 새 정부가 국민주권 시대를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이 개혁을 반드시 실현해야 한다. 정치는 갈등을 만들지만, 자치는 협력을 이끈다. 우리가 선택해야 할 것은 중앙에 집중된 권력이 아니라, 지역의 다양성과 자율성을 존중하는 ‘진짜 민주주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