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유럽의 사냥꾼들은 사냥감이 사람보다 말을 덜 경계하는 습성을 이용해, 말 뒤에 숨어 사냥감이 눈치채지 못하게 접근하곤 했다. 이 사냥법이 ‘스토킹 호스(stalking horse)’의 유래다. 스토킹은 ‘은밀히 접근하는’을 뜻한다.
오늘날 스토킹 호스는 주로 파산 매각이나 M&A 분야에서 사용되는 전문 용어다. 먼저 매도자는 특정 인수 후보자(스토킹 호스)와 조건부 인수 계약을 미리 체결해 최소 인수 가격과 주요 조건을 확정한다. 이후 공개경쟁 입찰을 통해 더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는 경쟁자가 있는지 확인한다. 이때 스토킹 호스에게는 최고 입찰가와 동일한 조건으로 우선 매수할 권리를 준다. 이 권리를 행사하지 않으면, 최고가를 제시한 입찰자가 최종 인수자가 된다. 우리말 ‘들러리’와 비교되기도 하지만, 스토킹 호스는 실제 인수 의향과 권리를 가진 실체라는 점에서 형식적인 존재에 불과한 ‘들러리’와는 다르다.
스토킹 호스 방식이 공식적으로 등장한 것은 1978년 미국 파산법이 전면 개정되면서부터다. 기업회생을 규정한 그 유명한 제11장의 절차에 따라 회사 자체 또는 일부 자산을 매각할 때 활용하는 방안으로 도입된 것이다. 1980년대 미국이 불황에 빠지면서 기업 파산이 늘어나자, 법원 주도의 대표적인 매각 방식으로 정착했다.
최근 서울회생법원은 스토킹 호스 방식으로 홈플러스를 매각하는 안을 인가했다. 홈플러스를 청산해 회수할 수 있는 가치가 계속 운영할 경우보다 크다는 분석이 나왔음에도 매각을 추진하기로 한 것이다. 청산 가치 실현에는 많은 리스크가 따르고 임직원·납품업체·입점업체 등의 생계에도 직결되는 사안이기에, 일단 영업을 지속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겠다는 취지다.
삼일회계법인이 주도할 이번 매각에서 가장 큰 관전 포인트는 ‘누가, 얼마의 가격에 스토킹 호스로 나설 것인가’이다. 다양한 국내외 기업들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지만, 매각이 아직 초기 단계인 만큼 구체적인 윤곽을 잡기 어려운 상황이다.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유통 기업들이 후보로 언급되곤 하지만, 현재 오프라인 유통업 전반이 침체된 상황이라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인수 금액은 대부분 회사 운영에 투입돼 채권 변제에 사용될 터인데, 현시점에서는 얼마가 될지 예측하기 어렵다. 약 3조원에 달하는 회생채권과 공익채권 중 어느 정도가 회수 가능한지에 따라 채권자들의 입장이 갈릴 수 있기 때문이다. 눈여겨볼 만한 선례로는 티몬 매각 사례가 있다. 약 1조2000억원의 회생채권을 보유했던 티몬을 오아시스가 200억원도 안 되는 금액에 인수한 안을 법원이 공익적 목적을 앞세워 강제로 인가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