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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현옥의 세계경제전망] 미국의 ‘달러 패권’ 강화 시도에 탄력 받는 스테이블 코인

중앙일보

2025.06.30 08:24 2025.06.30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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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권 진입 본격화하는 스테이블 코인
하현옥 논설위원
스테이블 코인의 제도권 진입이 본격화하고 있다. 지난달 17일 스테이블 코인 규제 법안인 GENIUS법이 미국 상원을 통과했고, 하원 표결을 앞두고 있다. 코인 발행과 동일한 가치의 준비금(현금이나 단기채 등)을 보유해야 하는 의무와 고객 자산 분리 보관 의무, 스테이블 코인 보유자 청구권 우선 보장 등의 소비자 보호 핵심 규정도 담았다.

스테이블 코인 규제 입법을 지지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다음달 법안 서명을 목표로 그동안 의회를 독려해왔다. 황수욱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스테이블 코인 법안은 규제라는 포장을 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독려하는 법안으로 해석된다”며 “규제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소비자 신뢰를 제고한다는 점에서 산업 확장의 밑바탕이 된다”고 분석했다.

달러와 1대1 교환 안정된 가치로
암호화폐 시장 기축통화 역할 해

2028년 시가총액 2조 달러 전망
준비금 위한 미 국채 매입 확대

발행 늘며 통화정책 약해질 듯
‘코인런’ 따른 시장 충격 우려도

법제화 작업과 함께 금융시장에도 발을 디뎠다. 시가총액 2위의 스테이블 코인 USDC를 발행하는 써클인터넷그룹이 지난달 5일 미국 나스닥에 상장했다. 공모가 31달러(4만1840원)로 상장 첫날 168% 폭등한 뒤 지난달 23일 장중 298.99달러(약 40만원)까지 치솟으며 최고 864.48% 뛰었다. 이후 주가가 하락했지만 지난달 27일 써클의 시가총액은 401억 달러(약 54조원)에 이른다.

신재민 기자
스테이블 코인은 미국 달러나 금 등 특정 자산의 가치에 고정되거나 안정적으로 유지되도록 설계된 암호화폐의 일종이다. 고정적인 가치를 유지하는 방식에 따라 자산(법정화폐나 가상자산, 상품 등) 준거형 스테이블 코인과 무담보형 스테이블 코인(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으로 구분된다. 담보형이 90%가량이며, 알고리즘형은 약 10% 정도다.

스테이블 코인 시가총액의 대부분은 달러 스테이블 코인이다. 달러 스테이블 코인은 가치를 페그(고정)한 것으로, 주로 달러와 1대1로 교환된다. ‘1 스테이블 코인=1달러’인 셈이다. 그렇다 보니 ‘달러 코인’으로 불린다. 달러 스테이블 코인을 매수하는 것은 달러를 매수하는 것과 같은 의미로 여겨진다.

스테이블 코인 시총 2400억 달러 돌파
이런 믿음을 뒷받침하는 것이 바로 준비금이다.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하려면 발행하려는 만큼 달러 현금성 자산을 준비금으로 보유해야 한다. 스테이블 코인 보유자가 환매를 요청했을 때 내줘야 하는 만큼 단기 미 국채와 환매조건부채권(RP) 등 유동성이 높은 현금성 자산으로 준비금을 쌓을 수밖에 없다.

신재민 기자
스테이블 코인의 양대 주축은 시가총액 1위인 USDT와 2위인 USDC다. 지난 5월 12일 기준 USDT(1506억 달러)와 USDC(607억 달러)가 전체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87%가량이다. USDT는 테더(Tether)에서 발행하며 달러와 1대1로 페그돼 있다. USDC는 나스닥에 상장한 써클이 발행하며 미국 기업이 발행했다는 게 장점이다. 준비금의 안정성도 USDT보다 우수하다는 평가다.

암호화폐 시장의 변동성에도 스테이블 코인 시장은 안정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스테이블 코인 시가총액은 처음으로 2000억 달러(약 270조원)를 돌파했고, 지난 5월 2400억 달러(약 324조원)를 넘어섰다. 스탠다드차터드는 2028년에 스테이블 코인 시가총액이 2조 달러(2669조원)에 근접할 것으로 예상한다.

신재민 기자
스테이블 코인의 거래 규모도 급증했다. 지난해 27조6000억 달러(3경7257조원)가 거래돼 전통적인 지급결제 수단인 신용카드 거래 규모(비자 15조9000억 달러, 마스터카드 9조8000억 달러)를 앞섰다. 전체 암호화폐 시장에서 스테이블 코인의 비중은 7% 정도에 불과하지만, 암호화폐 거래의 주요한 결제 수단으로 쓰이기 때문이다. 대다수 해외 거래소에서 암호화폐 거래시 스테이블 코인으로 변환이 필수인 만큼 암호화폐 시장의 기축통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국경 간 결제 증가도 스테이블 코인 거래가 늘어나는 이유다. 국경 간 거래에서 절차가 간편하고 낮은 수수료 등으로 거래 비용이 저렴해 스테이블 코인을 이용한 해외 송금이 증가하고 있다. 기존 국제은행간통신망(SWIFT) 기반 송금을 대체할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그뿐만 아니다. 자국 통화 가치가 불안정하고 하이퍼인플레이션 등을 겪고 있는 신흥국 등에서는 ‘달러 코인’인 스테이블 코인을 보유하려는 수요가 늘고 있다. 안정적인 달러 보관 수단으로 스테이블 코인이 부상하고 있다. 최근에는 스테이블 코인을 디파이 플랫폼(탈중앙화된 블록체인 기반 금융기관)에 맡기고 이자를 받을 수 있게 되면서 투자 수요도 꿈틀댄다.

이에 더해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의 법제화와 금융당국의 규제 완화 기조는 스테이블 코인에 날개를 달아주고 있다. 국부 유출과 탈중앙화에 민감한 중국은 민간이 발행하는 스테이블 코인을 견제한다. 대신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인 디지털 위안화 중심의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CBDC를 무효화하면서 스테이블 코인을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있다.

미 국채 ‘큰손’ 된 스테이블 코인 발행사
미국이 스테이블 코인 시장 조성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글로벌 디지털 자산 시장의 주도권을 갖는 한편 달러 패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다. 철옹성 같던 달러 패권에는 조금씩 균열이 발생하고 있다. ‘석유대금 결제 통화=달러’라는 ‘페트로 달러’의 공식이 무너지는 등 무역 결제 통화로서 달러의 입지는 줄어들고 있다. 스테이블 코인을 활용한 결제가 늘어나면 달러의 지배력도 자연히 강화된다.

박경민 기자
트럼프의 관세 폭탄에 ‘미국의 무역적자→신흥국 무역흑자→신흥국의 미 국채 구매’로 이어지는 달러 순환 시스템이 흔들리는 가운데 미 국채 시장의 ‘큰 손’인 중국을 대체할 신규 수요를 창출할 필요도 커졌다. 미 국채 매입 규모를 줄여가는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빈자리도 메워야 한다. 먹성 좋은 스테이블 코인은 미 국채 시장의 ‘큰 손’이 될 잠재력이 충분하다.

스테이블 코인이 발행액을 늘리려면 단기 미 국채를 사들여야 한다. 1대1 준비금을 쌓기 위해서다. 써클이 보유한 미 국채 중 만기 7일 이하 비중이 3분의 2에 달할 정도다. 미 국채 시장 규모(약 30조 달러·4경479조원)의 25%에 해당하는 만기 3개월 미만의 단기 국채 시장에 스테이블 코인이 구세주로 등장한 것이다. 스테이블 코인 발행사 입장에서도 미 국채를 보유할 유인은 크다. 국채 이자를 챙길 수 있어서다. 실제로 써클 매출액의 99%가 단기채 등 준비자산에서 나오는 이자 수익이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2024년 연간 미국 단기채 매수 주체 순위 중 스테이블 코인이 미국 머니마켓펀드(MMF)와 중국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상상인 증권에 따르면 지난 5월 중순 테더와 써클 등 스테이블 코인 발행사가 보유한 미 국채는 1220억 달러(약 162조원)다. 한국(1260억 달러·약 170조원)의 턱밑까지 추격했다. 미 재무부 산하 차입자문위원회(TBAC)의 보고서에서는 2028년까지 스테이블 코인 발행사가 보유한 미국 단기채 규모가 2024년 대비 8.3배 증가한 1조 달러(약 1349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디페깅 따른 코인런은 시장 불안 요인
스테이블 코인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그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BIS와 한국은행은 최근 보고서에 이런 우려를 담았다. 한국은행은 ‘금융안정보고서’에서 스테이블 코인의 사용이 보편화할 경우 통화의 신뢰성 저하와 은행의 신용창출기능 약화 등이 초래되면서 통화정책의 유효성을 제약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스테이블 코인의 가치 안정성 및 준비자산에 대한 신뢰가 훼손되거나 기술 오류 및 관련 범죄가 나타날 경우 디페깅(De-pegging·스테이블 코인 가격이 연동된 자산 가치에서 괴리되는 것) 및 대규모 상환 요구가 발생하며 ‘코인런’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무디스에 따르면 2023년 1~11월 주요 법정화폐 담보 스테이블 코인의 디페깅이 600번 이상 발생했다.

국채 시장의 교란도 빚어질 수 있다. 미 국채 등 준비자산 가치가 하락할 경우 스테이블 코인런이 발생하고 이로 인해 미 국채 가격 하락이 빚어지는 악순환이 벌어질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글로벌 금융시장으로 충격이 전이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리스크 확산을 막을 인프라의 부재다. 긴급 유동성을 공급할 수 없는 만큼 충격과 위험이 더 증폭될 수 있다는 것이다.

스테이블 코인, 통화 주권 훼손할 수도
금융시장의 지형도도 달라질 수 있다. 당장 예상되는 건 은행의 신용중개 기능 약화다. 마크 플래너리 플로리다대 교수는 “스테이블 코인 발행이 증가하면 은행에서 예금이 이탈하고 대출 여력이 줄어들 수 있다”며 “대응 능력이 부족한 소형은행을 중심으로 신용중개 능력이 취약해질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TBAC는 지난해 말 기준 미국 상업은행 예금(17조8000억 달러·2경4018조원) 중 비저축성 예금이나 당좌예금 등 6조6000억 달러(약 8095조원)를 스테이블 코인 시장으로 이동할 수 있는 위험에 노출된 예금 유형으로 분류했다.

스테이블 코인 발행으로 인한 광의의 화폐 유통량 확대도 문제다. 예금과 대출을 기반으로 통화량을 조절하거나 금리 조절을 통한 통화 정책이 무력해질 수 있다. 신보성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민간에게 통화 창출이라는 특권이 주어질 경우 통화량이 큰 폭으로 늘어나고 늘어난 통화를 매개로 과도한 부채가 집적되는 결과를 피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통화 주권 훼손과 신흥국 자본 유출 우려도 크다. BIS는 지난달 29일 발행한 연례보고서 초안에서 “스테이블 코인이 통화 주권을 위협하고 신흥국의 자본 유출 위험을 키울 수 있다”며 “이런 불안을 막기 위해 각국 중앙은행이 중앙은행 준비금과 상업은행 예금, 정부 채권을 통합한 토큰화된 ‘통합 원장’을 도입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현옥([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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