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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보수 정치에 희망은 있는가

중앙일보

2025.06.30 08:30 2025.06.30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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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대선이 끝난 지 한 달이 지났다. 인수위원회 기간을 거치지 못했지만, 이재명 정부는 빠르게 안정감을 찾아가고 있다. 임기 초 새 대통령의 평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비서실과 장관 인사는 일부의 잡음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무난하다는 인상을 주었다. 많은 시민도 거의 반년 가까이 지속된 혼란과 불안에서 벗어나 점차 평상심을 회복해 가는 것 같다.

반면, 그 사이 국민의힘은 그 위상이 초라해졌다. 불과 한 달 전까지 집권당이었는데 허망하게 권력을 넘겨주었다는 자기반성이 요란하게 제기될 법도 한데 당은 잠잠하다. 진작부터 이렇게 될 줄 알았다고 생각했는지 덤덤하게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마치 옷장에 넣어둔 옷을 다시 꺼내 입은 것처럼 야당 역할에도 어색함이 없어 보인다.

정권 뺏기고도 평온한 국민의힘
강남·TK 정당 전락하며 잇단 패배
보수의 가치 잃고 정체성도 흐릿
변화의 의지조차 느껴지지 않아
지난달 27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법사위원장 등을 선출하기로 한 의사일정 강행에 대해 우원식 국회의장에게 항의하다 퇴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말 국민의힘은 ‘졌지만 잘 싸웠다’고 생각하고 있는 걸까. 현실을 냉정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국민의힘은 이미 패배에 익숙한 정당이 됐다. 2016년 이후 국민의힘은 전국 단위 선거에서 제대로 이기지 못했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4년 전 얻었던 152석에서 30석을 잃고 122석으로 제2당이 되었다. 4년 뒤 21대 총선에서 미래통합당은 겨우 103석을 얻었다. 이때 더불어민주당은 180석을 얻었다. 그리고 2024년 22대 총선에서도 국민의힘은 108석으로 175석을 얻은 더불어민주당에 두 번의 총선에서 잇달아 대패했다.

2017년 대통령 선거에서도 패배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와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의 득표율을 합쳐도 30% 조금 넘는 정도였다. 그사이 보수 정당이 거둔 유일한 승리가 2022년 대통령 선거였는데 그 격차는 불과 0.73%p였다. 승패는 갈렸지만, 내용상으로는 사실상 무승부였다. 문재인 정부의 무능한 부동산 정책으로 인한 서울 지역 유권자의 분노가 애당초 이기기 어려웠던 선거를 그나마 무승부로 이끌었다. 이처럼 2016년 이후 10년 동안 보수 정당은 1무 5패를 기록했다.

현실이 이런데도 보수는 여전히 정치적으로 주류라고 생각할까? 인구의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몰려 있는데, 국민의힘은 서울 강남과 TK 정당으로 고착되어 가고 있다. 연령적으로도 국민의힘은 경제활동의 주축인 30대, 40대, 50대에서 큰 지지를 받지 못한다. 현업에서 물러난 노령층이 주요 지지층이다. 지역적으로나 세대로나 국민의힘은 당면한 우리 사회의 문제와 고통에서 벗어나 있다. 더욱이 무능한 리더십으로 대통령이 두 번이나 임기 중 쫓겨난 보수 정치가 옛날 일을 끄집어내어 우리가 더 국가 경영에 유능하다고 말하기도 어렵게 됐다. 보수 정치는 이제 정치적으로 비주류가 되었고 시대적으로 외면받는 입장이 되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우선 보수의 가치가 사라졌다. ‘법과 질서’가 보수의 핵심 가치인데, 법을 어기고 질서를 무너뜨린 대통령을 보수 정당이 옹호하고 나섰다. 도그마를 반대하고 다양성과 유연함을 존중하는 것이 보수의 가치인데, 계엄-탄핵 정국에서 보여준 모습은 독선과 극단주의였다. 격정적 감정이 아니라 이성에 대한 믿음을 갖고 품격과 신중함을 보이는 것이 보수의 가치인데, 최근 보수의 모습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다. 결국 보수 정치에는 시대적 아픔에 달려들어 해결해 보겠다는 의지도 안 보이고 그 역량과 유능함에 대한 믿음도 사라졌다. 보수가 무엇인지 그 근본적 정체성조차 흐릿해졌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하루 앞둔 지난 4월 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인근 수운회관(라이온스회관) 앞 국민의힘 천막 앞에서 김장겸, 이종배, 나경원, 김석기 국민의힘 의원(왼쪽부터) 등이 '탄핵 기각' 등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더 심각한 건 변화의 의지가 안 보인다는 점이다. 이번 대선의 패배와 두 번의 탄핵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도 보수 정치는 별로 나아질 것 같지 않다. 사실 심각한 경고음이 울린 것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데도 지난 10년간 보수 정치는 바뀌지 않았다. 그동안 보수 정당은 미래를 도모하지 않았다. 새로운 보수 정치를 향한 근본적인 자기혁신은 없고,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당면한 위기 상황을 일단 모면해 보자는 임시방편으로 버텨왔다. 2010년부터 오늘날까지 보수 정당에는 무려 14명의 비상대책위원장이 배출됐다. 이준석 대표를 내쫓고 난 2022년 8월 이후만 보더라도 주호영, 정진석, 한동훈, 황우여, 권영세, 김용태 등 6명의 비상대책위원장이 당을 이끌었다. 정상보다 비상이 오히려 정상적인 것처럼 지내온 것이다. 제대로 된 정당이라고 보기 어렵다.

보수 정치가 다시 살아나려면 낡은 건물을 부수고 아예 새로이 집을 짓겠다는 정도의 변화를 만들어내야 한다. 무엇보다 과감한 세대교체가 필요하다. 김용태, 김재섭 의원뿐만 아니라 원외에서 뛰고 있는 젊은 정치인들을 발굴해서 역할을 맡기고 정치적으로 성장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시대에 맞는 새로운 보수의 가치도 만들어내야 하고, 안정적인 당 리더십도 확립해야 한다. 이런 일에는 으레 희생과 진통이 뒤따르기 마련이지만, 그걸 감내하려는 위기감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지금이 보수 정치의 바닥은 아닌 것 같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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