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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기업인 ‘교도소 담장 위’ 걷게 하는 배임죄 이젠 고칠 때

중앙일보

2025.06.30 08:34 2025.06.30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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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진성준 정책위의장이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상법 개정안 추진과 관련해 경제계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경제6단체 부회장단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나치게 모호하고 포괄적, 전문가도 혼란



미국은 배임죄 없고, 일본·독일은 엄격 적용

상법 개정안 처리를 앞둔 여당이 어제 경제 6단체와 간담회를 했다. 경제계는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마지막까지 고민해 달라”고 호소했다.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경제계가 우려하는 문제가 발견된다면 얼마든지 제도를 수정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일단 시행 후 보완 방침을 굳힌 것으로 풀이된다.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 확대를 넘어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와 집중투표제 의무화 등이 새로 포함된 여당의 상법 개정안이 그대로 통과될 경우 상장사가 단기 이익만을 좇는 외국 투자자에 휘둘릴 우려가 크다. 또 위험을 회피하려는 보수적 경영을 조장해 공격적 투자를 바탕으로 하는 한국 기업 특유의 장점이 훼손될 수 있다. 기업가 정신의 후퇴와 투자의욕 위축이라는 이런 부작용들은 숫자를 통해 명시적으로 잘 드러나지는 않는다. 그런데 어떻게 나중에 보완하고 고치겠다는 것인지 걱정스럽다.

여당이 경제계가 오랫동안 주장해 온 배임죄 완화·폐지에 전향적인 입장을 밝힌 점은 그나마 다행이다. 대한민국이 ‘기업인 처벌 공화국’ 소리를 듣는 데는 배임죄 탓이 크다. 오죽하면 배임죄 때문에 기업인들이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처지라는 한탄까지 나올까. 법률상 배임죄는 ‘업무상 임무를 위배해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해 손해를 가한 경우’로 규정돼 있으나 구성요건이 지나치게 모호하고 포괄적이다. 검찰이 입맛에 따라 기소 여부를 넓게 적용할 수 있고, 이 때문에 재판부의 판단도 크게 달라진다. 실제로 배임죄 무죄율은 다른 범죄의 두 배를 웃돈다. 전문가인 법조인조차 법조문이 헷갈릴 지경이라면 죄형법정주의에 따른 명확성의 원칙을 위배한 것이다.

배임죄는 형법과 상법에 규정돼 있고, 특정경제범죄법에 가중처벌 규정까지 있다. 특정경제범죄법에는 이득액이 50억원을 넘으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 이득액이 5억원 이상 50억원 미만일 때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한다. 중범죄를 다스리기 위한 ‘하한형’을 적용한 것이다.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하는 살인죄와 비슷한 중형을 배임죄에 때리는 건 지나치다. 민사 분쟁으로 해결하면 될 일을 과도하게 형사처벌에 의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 지도 오래다. 미국은 배임죄 자체가 없다. 일본과 독일은 배임죄가 있지만 우리보다 엄격하게 적용한다. 독일은 경영 판단의 원칙을 명문으로 규정해 경영진의 면책 가능성을 높여 준다.

배임죄 문제의 심각성은 이재명 대통령도 잘 알 것이다. 이 대통령이 2023년 대장동·위례 개발 특혜 의혹 등과 관련해 기소된 혐의 중에도 배임죄가 들어 있다. 국정 철학으로 실용주의를 내건 정부답게 여당은 경제계의 하소연을 충분히 듣고 근본적인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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