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8월 27일 서울 예술의전당 무대에 선다. 클래식 연주단체인 세종 솔로이스츠와 함께 하는 낭독 형식으로, 베르베르가 참여하는 첫 클래식 공연이다. 그는 신작 소설 『키메라의 시대』를 낭독 형식으로 재창작해 바이올린 등의 현악기, 플루트, 기타로 이뤄진 앙상블과 함께 들려준다. 낭독과 연주가 교대하는 무대다.
1일 온라인으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베르베르는 “선사시대 모닥불 옆에서 부족들을 모아놓은 이야기꾼의 입장”이라고 했다. “이렇게 스토리를 직접 들려줄 수 있는 것이 영광이다. 내 직업 자체가 이야기꾼이다. 고착화된 글 대신 낭독으로 독자와 상호작용할 기회다.” 그는 또 “인간의 목소리는 문자보다 더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다”며 낭독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베르베르의 새 작품은 2023년 말 프랑스에서 출간됐고 한국 발매를 앞두고 있다. 배경은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이후 폐허가 된 세계. 여기에 새로운 지배 종족인 ‘키메라’가 등장한다. 인간과 동물을 혼종한 DNA를 가진 키메라는 하늘을 날고 물속에서 숨을 쉬며 땅속을 파고든다. 베르베르는 “멀지 않은, 어쩌면 10년 후에도 생길 수 있는 일”이라며 “공상과학(SF)이 아니라 미래를 예측하는 소설”이라고 했다. 그는 또 “신인류는 지금과 같은 폭력과 두려움을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았다”며 “표면적 변화로는 충분하지 않고 의식 상태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작곡가인 김택수가 여기에 맞춰 음악을 썼다. ‘키메라’의 이야기에 맞춘 8악장, 40분 길이의 실내악 작품이다. 하늘, 바다, 지하 세계에 맞는 음악을 17세기 바로크 형식의 모음곡으로 작곡했다. 음악에 대해 베르베르는 “프로코피예프 ‘피터와 늑대’ 모음곡처럼 하나의 악기가 하나의 종족을 대변한다”고 소개했다. 물은 기타, 공기는 플루트, 땅의 종족은 바이올린이 표현하는 음악이다. 그는 또 “음악을 듣고 영화의 배경 같다는 느낌을 받았고, 마치 음악이 하나의 문장처럼 들려서 좋았다”고 했다.
베르베르는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그는 “어머님이 피아노 선생님이어서 음악과 함께 자랐다”며 “특히 비발디의 피콜로 협주곡을 듣고는 큰 충격을 받아 피콜로를 배우게 됐다”고 했다.
이번 공연은 세종 솔로이스츠의 음악제인 제8회 ‘힉엣눙크!’ 프로그램 중 하나다. 세종 솔로이스츠의 강경원 총감독은 “환경, 기술, 다양성이라는 주제로 음악제를 기획하던 중 베르베르의 신작과 협업 기회를 가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벨기에에 거주하는 기타리스트 드니 성호가 베르베르를 세종 솔로이스츠에 소개하는 역할을 했다. 드니 성호는 “10년 전부터 베르베르를 알고 지냈는데 무언가 음악적인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주선했다”고 했다. 그는 이번 공연에서 기타 연주와 프로듀싱을 맡는다.
라틴어로 ‘여기 그리고 지금’이라는 뜻의 ‘힉엣눙크’ 음악제는 클래식 음악의 전통과 동시대성에 모두 주목한다. 올해는 바이올리니스트 길 샤함이 출연하는 8월 26일 첫 공연으로 시작해 9월 5일 막을 내린다. 베르베르와 함께 하는 무대는 서울 외에도 세종·대전·광주·대구·부산에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