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전이냐 숨고르기냐.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해 온 ‘방송 3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의 처리 시기를 둘러싼 당내 온도차가 1일 수면 위로 불거졌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여당 의원들이 이날 최민희 과방위원장실에서 ‘공영방송 복원 위한 방송 3법 개정,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주제로 긴급 토론회를 열어 조속한 법안 처리 필요성을 주장했다.
“방송 3법은 이재명 대통령의 결단으로 진행된 것이다. 조속하게 이 법이 통과되도록 더 노력하겠다”(최 위원장)는 게 이날 토론회의 핵심 메시지였다. 최 위원장은 “시민단체가 하는 토론회를 이 시점에 과방위 회의실에서 하는 건 오늘 나오는 모든 말이 공식적이라는 선언”이라며 “이 대통령이 대통령실 앞에서 이호창 언론노조 위원장과 ‘방송 3법 통과’라는 팻말을 들고 사진을 찍는 순간 대통령의 뜻이 만천하에 공개됐다”고 주장했다.
과방위 간사인 김현 민주당 의원도 “7월 안에 방송 3법은 처리 수순을 밟을 것”이라며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즉시 공표돼 (언론노조가 개정을 촉구하며 진행 중인) 108배를 중단해도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언론노조 관계자들과 국정기획위원회 사회2분과 소속인 추혜선 전 정의당 의원, 김경호 제주대 교수 등이 참석했다. 민주당 과방위원들은 “합의 의지가 없는 국민의힘을 두고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다”며 2일 법안소위를 열어 방송 3법을 의결할 방침이다.
하지만 민주당 원내지도부는 이 같은 과방위 차원의 움직임에 ‘숙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원내 핵심 관계자는 이날 중앙일보 통화에서 “오늘 토론회는 과방위 차원에서 움직인 일”이라며 “과방위가 방송3법 의결을 강행하더라도 이후 법사위 단계에서 숙의 과정을 더 거칠 여지가 남아있다”고 말했다.
야당 반대가 큰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인준안과 새 정부 첫 추가경정예산(추경)안, 상법 개정안의 처리가 시급한 상황에서 자칫 극심한 진영 대결을 부를 수 있는 방송3법까지 무리하게 밀어붙일 상황은 아니라는 게 원내지도부 차원의 판단이다.
원내에서는 ‘7월 또는 8월’이 처리 시기로 거론된다.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이 지난달 26일 기자간담회에서 “(방송 3법은) 강행 처리가 능사가 아니다”라며 속도 조절을 공식화한 뒤, 진보 성향의 재야 언론계 반발에 부딪힌 최민희 위원장 등이 의도적으로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언론인 출신 한 의원은 “언론 개혁은 이재명 정부의 핵심 과제이지만, 정무적 부담이 있다”며 “그래서 과방위가 더 적극적으로 밀어붙일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언론노조 등에서는 민주당이 여당이 된 뒤 “방송 3법 추진 동력이 약해졌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야당 시절 공영방송 이사회를 증원하고 이사 추천 시 국회 추천 몫을 줄이는 방향의 법 개정을 추진했지만, 여당이 된 지금은 반대로 공영방송에 대한 정부·여당의 영향력을 유지할 필요가 커졌기 때문이다.
이날 토론회에서 민주당 과방위원들은 공영방송 3사(KBS·MBC·EBS) 이사진을 13~15명으로 확대하고, 이 중 5~6명을 국회 추천한다는 ‘여당판 민주당 단일안’을 공개했다. 이와 관련, 원내지도부 소속 의원은 “국회에서 상임위원장 선출이 늦게 되는 바람에 처리가 밀린 거고, 방송 3법을 처리하겠다는 의지는 확고하다”고 말했다.
한편 이 대통령은 지난 4월 말 사의를 밝혔던 김태규 방송통신위원회 부위원장 면직을 이날 재가했다. 방통위는 이진숙 위원장 1인 체제로 사실상 기능을 상실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