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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문의 검은 돌 흰 돌] 랭킹 이야기

중앙일보

2025.07.01 08:01 2025.07.01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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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이란 단어가 정식으로 바둑 속에 들어온 것은 2009년부터다. 한국기원이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였던 배태일 박사와 손잡고 새 랭킹 시스템을 선보였다. 1위는 이세돌 9단, 2위는 이창호 9단, 3위는 강동윤 9단. 당시 이세돌은 26세의 전성기, 이창호는 34세로 내리막길에 서 있었다. 20세의 강동윤은 막 물이 오르는 신흥 강자였다. 16년이 흐른 지금, 이세돌은 은퇴했다. ‘지지 않는 소년’으로 불렸던 이창호는 나이 50이 되었고 랭킹은 83위까지 밀렸다. 신기한 건 강동윤이다. 2025년 6월 랭킹에서 강동윤은 신진서, 박정환에 이어 3위다. 16년 전과 똑같다. 승부 세계 최강의 적인 ‘세월’을 버텨내는 그의 힘이 놀랍기만 하다.

이창호 9단은 최근 지지옥션배에서 연전연승했다. 40세 이후의 남녀 기사가 대결하는 ‘신사와 숙녀의 대결’인데, 이창호는 아직 이름값을 한 적이 별로 없다. 올해는 심기일전 선봉으로 출전해 연전연승하고 있다. TV에서 박태희 3단과의 대결을 봤는데, 선수 이름 바로 밑에 랭킹이 작은 글씨로 적혀 있었다. 이창호 83위, 박태희 226위. 이 판을 이긴 이창호는 정유정(227위)까지 꺾고 6연승 했다.

프로기사는 총 447명. 랭킹 시스템 자체를 싫어하는 기사도 많다. “바둑은 점잖은 게임인데 왜 등수를 매기냐, 굳이 하려면 30위 또는 50위까지만 해라.” 그러나 바둑이 스포츠화를 추진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스포츠냐 아니냐의 싸움이 격렬한데 어느 쪽에 설 것인가. 바둑이 스포츠라면 랭킹제를 받아들여야 했다. 발표는 100위까지였다. 100위 이후를 발표하는 건 많은 기사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행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국기원은 올해부터 1~447위 전원의 랭킹을 발표했다.

올해 지지옥션배의 키맨은 조한승 9단이다. 이세돌과 입단 동기생인 그는 현재 43세. 나이 들어서도 기량이 쇠퇴하지 않는다. 바둑리그에서도 맹활약했고, 지지옥션배에서도 3년 연속 신사팀 우승을 결정지었다. 대회 주최 측은 올해 신사팀 출전에 한 가지 제한을 추가했다. “40세 이상이 출전하되 랭킹 30위 이내 선수는 참가할 수 없다.” 쌍방 전력을 맞추기 위한 조치였는데, 조한승은 선수를 선발한 4월에 31위였다. 아슬아슬 커트라인을 통과했다. 한데 랭킹이 급상승해 지금은 21위다. 묘하게 됐다. 이 랭킹이 이어진다면 내년엔 출전이 어렵다. 사실 숙녀팀에도 강자는 많다. 여자 1위 최정 9단이 33위, 2위 김은지 9단이 35위다. 올해 승부도 이들의 싸움에서 결정될 것이다.

눈을 돌리면, 보수적인 일본은 지금도 랭킹 자체가 없다. (일본 바둑은 정말 죽으라고 변하지 않는다.) 대신 프로기전 서열이 있다. 상금이 가장 많은 기성전이 1위, 명인전이 2위다. 3위는 왕좌전, 4위는 천원전, 5위는 본인방전이다. 기성, 명인, 천원, 본인방을 독차지한 28세의 이치리키 료 9단이 자동으로 1위가 된다. 2위는 왕좌의 이야마 유타 9단, 3위는 10단의 시바노도라마루 9단.

중국은 한국과 비슷한 시기에 랭킹제를 도입했다. 강자가 많고 랭킹 변화가 극심하다. 최근 1위는 2004년생 왕싱하오 9단이다. 2위는 양딩신 9단, 3위는 딩하오 9단. 왕싱하오는 신진서 9단에게 1승4패로 밀리지만 4살 어리다는 장점이 있다. 바둑은 나이가 크게 말을 하는 동네다. 한국 부동의 1위 신진서는 25세. 그야말로 전성기다. 하나 중국은 비슷한 강자들이 끝없이 늘어서 있다. 그중에서도 중요한 적수가 있다. 4살 어린 추격자 왕싱하오와 동갑내기 딩하오다. 신진서가 이들을 어떻게 요리하느냐. 일단은 여기에 세계바둑의 판도가 달렸다고 봐야 한다.

박치문 바둑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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