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국가대표로 멈추면 안 되죠. 그라운드에서 아버지를 뛰어넘은 아들이 되고 싶습니다.”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대회에 처음 나서게 된 이호재(25)와 이태석(23·이상 포항 스틸러스)의 각오는 다부졌다. 이호재는 선수 시절 강력한 슈팅으로 유명했던 ‘캐넌 슈터’ 이기형(51) 옌볜(중국) 감독의 아들이고, 이태석은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인 이을용(50) 경남FC 감독의 아들이다. 지난달 23일 홍명보(56)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은 2025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동아시안컵) 대표팀 명단을 발표했다. 명단에 나란히 이름 올린 두 선수를 최근 서울 강남의 한 축구장에서 만났다.
홍명보팀은 오는 7일 중국, 11일 홍콩, 15일 일본과 차례로 격돌한다. 국제축구연맹(FIFA) A매치 데이에 열리는 대회가 아니어서 대회 기간에 올 수 없는 유럽파 선수들은 이번에 모두 빠졌다. K리그와 일본 J리그에서 뛰는 신예 위주로 대표팀을 꾸린 홍 감독은 이번 대회를 2026년 북중미월드컵에 나설 국내파 옥석 가리기 기회로 삼을 계획이다.
이호재는 국가대표팀(A팀)이 처음이다. 이로써 이기형-호재 부자는 고 김찬기(1932∼2011)-석원(64), 차범근(72)-두리(45), 이을용-태석에 이어 축구대표 부자 4호가 됐다. 이호재는 “5살 때 축구를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아버지처럼 태극마크를 달고 싶었다. 꿈을 이루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이어 “아버지는 평소 칭찬보다는 지적이 많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긴장하지 말고 대표팀에서 잘하길 응원하겠다’고 따뜻하게 격려해주셨다”고 전했다.
부자가 포지션은 다르다. 이기형은 측면 수비수(A매치 47경기)였고, 이호재는 공격수다. 2021년 포항에서 프로에 데뷔한 이호재는 지난 시즌 K리그1에서 9골을 터뜨리며 차세대 토종 골잡이로 주목받았다. 올 시즌에는 한층 더 물이 올라 21라운드(총 38라운드)만에 8골(득점 5위)을 넣었다. 국내 선수 중에는 전진우(26·전북 현대·12골), 주민규(35·대전하나시티즌·10골)에 이어 득점 3위다.
키 1m92㎝인 이호재는 공중볼 다툼과 슈팅 모두 뛰어나다. 팬들은 그런 그를 맨체스터시티(잉글랜드)의 공격 ‘괴물’ 엘링 홀란(25·1m94㎝)에 빗대 ‘K홀란’으로 부른다. 그는 “좋은 유전자 덕분에 슈팅이 가장 자신 있다. 전성기 시절 아버지와 견줘도 슈팅 파워와 정확도에서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국가대표가 된 것에 만족하지 않겠다. 경기에 나선다면 반드시 골을 터뜨려 실력을 입증하겠다. 다음에 또 발탁돼야 이번에 보지 못하는 (손)흥민이 형을 만날 수 있다”며 웃었다.
왼쪽 측면 수비수인 이태석은 이제 대표팀이 익숙하다. 지난해 11월 열린 북중미월드컵 아시아 3차예선 쿠웨이트 원정경기(한국 3-1승)를 통해 A매치에 데뷔했다. 당시 후반 교체 선수로 나선 그는 이후에도 꾸준히 태극마크를 달았다. 벌써 A매치 5경기를 뛰었다. 2021년 FC서울에서 프로에 데뷔한 그는 지난해 8월에 포항으로 이적해 리그 정상급 수비수로 떠올랐다. 아버지처럼 왼발킥이 일품이다.
이태석도 태극마크를 달고 일정 기간 진행되는 국제대회에 출전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대표팀 월드컵에 두 차례(2002, 06년) 출전했고 A매치 51경기에 나섰던 아버지에게 국가대표에 관한 조언을 구한다. 그는 “아버지가 ‘잘하고 있으니 지금처럼 긴장하지 말고 편안하게 뛰면 된다’고 하셨다. 소속팀에 관한 건 쓴소리를 많이 하는 편인데, 대표팀 얘기를 할 때는 내가 긴장할까 봐 주로 칭찬해준다”며 “긴장하지 않고 주 무기인 왼발의 능력을 한껏 뽐내는 게 목표”라고 덧붙였다.
둘은 서로에 대한 기대도 전했다. 이태석이 “대표팀에서 호재 형과 함께 뛰면 소속팀에서 뛰는 것처럼 편안할 것 같다”고 기대감을 표시하자, 이호재가 “태석이는 특급 도우미다. 올 시즌 2골이나 태석이가 어시스트했다. 동아시아컵 한일전에서 태석이의 왼발 크로스를 받아서 멋진 슈팅으로 골망을 흔드는 상상을 한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