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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광, 상법개정 앞 교환사채 발행 논란…제동 건 금감원

중앙일보

2025.07.01 08:01 2025.07.01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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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가치 훼손 논란

현금성 자산이 1조원대에 이르는 태광산업이 최근 교환사채(EB)를 발행해 논란이다. 자사주를 소각하지 않고 대주주 지배력을 강화하려 ‘꼼수’를 썼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가가 출렁였고, 금융감독원이 제동을 걸었다.

태광산업은 1일 내년까지 1조5000억원을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화장품·에너지·부동산 관련 기업을 인수하기 위해서다. 태광 측은 “주력인 석유화학·섬유 산업 업황이 극도로 나빠졌다. 신사업 투자로 사업 구조를 재편하겠다”고 밝혔다.

태광그룹은 태광산업·흥국생명·티캐스트 등을 거느린 재계 59위(자산 8조6680억원) 기업집단이다. 1분기 말 기준 현금성 자산 1조4000억원, 지분 매각 대금 9000억원 등을 갖고 있다. 부채는 880억원에 불과하다. 다만 태광 측은 실제 신규 사업에 투자할 수 있는 자금은 1조원 미만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지난달 27일 이사회에서 3186억원 규모 EB를 발행한다고 의결한 점이다. 태광산업의 자사주 전량(주식 총수의 24.41%)을 매각하는 조건의 EB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겠단 계획이다. 당시 인수 대상자는 공시하지 않았다. EB는 회사가 가진 주식(자사주 또는 타사주)으로 교환할 수 있는 권리가 포함된 채권이다. 자사주에는 의결권이 없지만 대주주 우호 세력에게 EB를 넘기면 의결권이 살아나 대주주의 지배력을 높일 수 있다.

반면 자사주 매각으로 유통 주식 수가 늘면 주가는 내려갈 가능성이 크다. EB 발행 소식이 알려진 지난달 30일 증시에서 태광산업 주가는 전 거래일보다 11.24% 급락했다.

이재명 정부가 자사주 의무 소각을 추진(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하자 태광산업이 EB 발행으로 선수를 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태광산업 2대 주주인 트러스톤자산운용은 “EB 발행은 제3자 배정 유상증자와 동일한 효과가 있어 기존 주주 이익을 침해한다”며 “경영상 합리적 판단이 아니라 정부의 주주 보호 정책을 회피하려는 꼼수”라며 위법 행위 중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야당도 상법 개정의 빌미로 작용할 수 있다며 ‘역풍’을 우려했다. 최은석 국민의힘 의원은 “자사주를 대주주의 지배력 유지 수단으로 악용하거나, 소액 주주의 지분 희석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는 일방적인 증자 결정은 ‘기업 지배구조 개선’이란 시대적 요구에 역행한다”며 “소수 기업의 잘못된 관행이 상법 개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금감원은 이날 태광산업의 EB 발행 신고에 대해 정정 명령을 내렸다. 금감원 관계자는 “상장사가 자사주를 처분할 때는 처분 상대방을 이사회에서 결의해야 하는데, 태광산업은 처분 상대방을 공시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날 태광산업 주가는 전 거래일보다 7.76% 오른 채로 마감했다.

금감원이 제동을 걸자, 태광은 이날 오후 7시 20분쯤 인수 대상자를 한국투자증권으로 의결했다고 공시했다. 태광 관계자는 “한국투자증권이 EB를 인수한 뒤 제3자에게 넘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단 급한 불을 끄려고 증권사를 내세웠다는 의미다.

대신증권에 따르면 자사주 교환형 EB를 발행한 기업 수는 2022년 19건→2023년 26건→2024년 31건으로 증가세다. 올해는 상반기에만 17건을 기록했다. 이경연 대신증권 책임연구위원은 “기업이 자사주를 소각하는 대신 처분해 유동성을 확보하고, 지배구조 개선 목적으로 활용하려는 흐름이 뚜렷하다”고 분석했다.





김기환.염지현([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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