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문이 대사가 된다. “(헐레벌떡 문을 열고 들어와) 마마 어이 이러십니까”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고 치자. 괄호 안의 지문은 작가가 배우에게만 대본을 통해 전달하는 일종의 지시 사항이다. 관객이 모를 수도 있고, 몰라도 될 수 있다. 그런데 연극 ‘호야:好夜’에선 지문도 배우가 대사로 읊는다. 이런 시도가 처음엔 낯설었는데 곧 작품에 몰입하게 만드는 요소가 됐다. 또한 11명의 배우와 연주자들은 약 90분간의 공연 내내 퇴장 없이 관객과 호흡하며 볼거리를 제공한다. 새소리, 닭울음 소리 같은 효과음도 배우들이 무대에서 직접 냈다.
이런 실험들이 웃음을 주는데, 내용은 아련하다. 조선시대 중전은 두 아이를 잃고 왕의 사랑을 받지 못한 채 독수공방이다. 중전의 오라비는 왕의 성은을 받은 귀인과 사랑에 빠진다. 이 사랑은 권모술수에 이용되며 역모 사건에 휘말린다. 공연의 끝은 ‘사람다움’에 대한 질문이 채운다. 정을 나누는 것조차 억압받는 이들의 호소에 객석에선 흐느낌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연극 ‘호야:好夜’는 시범 공연 형태로 첫선을 보인 2006년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 대상 등을 수상하고 2009년 ‘서울문화재단 대학로 우수작품 인큐베이팅 프로젝트’에 선정됐다. 극단 ‘죽도록 달린다’의 서재형 대표가 연출을 맡았다. 극단 이름 탓인지 이 작품에서 배우들은 실제로 죽도록 달린다. 한 관객은 공연 후 “배우들 살 빠지겠다”라고 했다. 그의 부인인 한아름 작가가 대본을 썼다. 한 작가는 “처녀 시절 써놓은 마지막 희곡이다. 어쩌면 다시 쓰지 못할…”이라고 밝혔다. 대작이 넘쳐나지만 참신하고 색다른 소극장 연극을 보는 맛도 꽤 쏠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