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중앙일보

광고닫기

[노트북을 열며] 정권 성패의 가늠자는 언제나 인사였다

중앙일보

2025.07.01 08:12 2025.07.01 20:31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기사 공유
권호 정치부 기자
정권 초 인사 취재는 정치부 기자를 극한으로 몰아넣는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란 문구는 클리셰 같겠지만 진리이기 때문이다. 인사를 보면 그 정부의 향배가 가늠된다. 낙종하면 만회가 극히 어렵기도 하다.

2007년 말 이명박(MB) 정부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시작이었다. 그땐 막내 기자로, 한마디라도 더 들으려 실세들 집 앞에서 하염없이 기다리기 일쑤였다. “거 추운데 들어와”라던 고(故) 정두언 같은 이는 은인이었다. 본인이 파격 발탁의 당사자라서일까. MB는 인사에 진심이었다. 장관 후보자들을 직접 소개하는 파격을 택했다. 신선했지만, 이 방식은 오래 가지 못했다.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내각’ 등의 혹평이 잇달아서다.

2012년 12월 인선 명단이 든 봉투를 들어 보이는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 중앙포토
다음은 2012년 말 박근혜 인수위. 여권 핵심들 뇌리엔 “지난번에 촉새가 나불거려서”라던 박 당선인의 한마디가 깊이 각인돼 있었다. 취재원들은 입에 지퍼를 채웠고, 인사 특종도 낙종도 없다시피 했다. 어느 날 당시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이 밀봉된 봉투를 들고 나타났다. 그는 봉투를 여는 퍼포먼스를 한 뒤, 1차 인수위 명단을 읊었다. 내용보다 형식이 화제가 됐다. ‘밀봉 인사’는 박근혜 정부의 인선을 상징하는 부정적 수식어가 됐다.

윤석열 전 대통령(오른쪽)이 2022년 4월 13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 브리핑룸에서 열린 2차 내각 발표에서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가운데)를 소개하고 있다. 왼쪽은 한덕수 전 국무총리. 인수위사진기자단
2022년 윤석열 인수위는 현장 기자로 지켜본 마지막 인선이었다. 소수 여당의 한계 탓에 울며 겨자먹기로 택한 한덕수 총리, 파격적이었지만 지금은 원수가 돼버린 한동훈 법무부 장관, 충제(忠弟)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충형(忠兄) 김용현 경호처장 등이 포인트였다. “안배는 없다. 실력만 본다”라고 했지만 충암고·검사·법대 등의 키워드가 추출됐다. 지금 보면 12·3 계엄의 그로테스크한 예고편 같지만 그때는 알지 못했다.

이재명 정부 인사는 현장 기자가 아닌 내근데스크로 지켜봤다. 큰 특징은 ‘내각제 아니냐’ 싶을 정도의 국회의원 중용이다. 행정부와 입법부가 같은 방향으로 속도감 있게 내달려 현안을 돌파하겠다는 취지가 읽힌다. 지명 순간까지 새마을호를 몰던 현장 노동자이자 최초의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인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컴퓨터 전문지 기자로 시작해 여성으로 유리천장을 뚫고 네이버의 수장이 됐던 한성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 등 눈여겨볼 포인트도 있다. 동시에 재개발 지역의 도로를 사서 큰돈을 남긴 후보자, 후임병을 구타한 사실을 자서전에 쓴 후보자도 있긴 하다. 곧 시작될 무더기 인사청문회를 통해 알곡과 쭉정이가 잘 걸러지길 바란다.





권호([email protected])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