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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정부광고 대행기관 복수화, 득보다 실 크다

중앙일보

2025.07.01 08:20 2025.07.01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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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희 전 한국광고학회장·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그럴듯한 명분의 정책이지만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일으켜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대학 시간강사 일자리를 보호하겠다며 국회가 제정한 ‘강사법’이 대표적 사례다. 강사법 시행 이후에 일부 강사의 일자리는 보호됐을지 몰라도 수많은 박사는 시간강사 자리도 얻지 못하는 비극을 초래했다. 부담이 커진 대학들이 채용을 기피해서다.

새 정부 들어 정·관계 일각에서 논의되고 있는 정부광고 대행 문제도 자칫하면 ‘제2의 강사법 사태’를 부를까 걱정이다. 일부 관계자들은 정부광고의 수탁기관을 신문과 방송, 즉 미디어별로 쪼개면 정부광고 독점 대행(창구 단일화)의 문제점을 해소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대행 창구가 한국언론진흥재단으로 단일화된 현재의 구도에서는 정부광고가 유력한 소수 매체에 쏠려 소규모 언론이나 지역 언론사에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강사법 사태에서도 그랬듯이 정부광고 업무를 미디어별로 분리하면 득보다 실이 클 것이 분명하다.

수탁기관 신문·방송 분리 거론
창의력 타격, 광고품질 저하 우려
과당경쟁 막는 현행 제도 효율적

정부광고는 세 단계를 거쳐 시행된다. 먼저 어떤 메시지를 통해 전달할지 광고전략을 기획하고, 다음으로 그 정책을 어떻게 알릴지 크리에이티브 전략을 수립한다. 그리고 주어진 예산으로 어떤 매체에 광고를 노출해야 효과적일지 연구하고 판단하는 매체 전략을 세운다. 그런데 미디어별로 분리 대행을 하게 되면 자연히 앞의 두 과정에 소홀할 수밖에 없다. 창의력과 상상력의 나래를 펼 공간이 확 줄어들어 정부광고의 품질 저하가 불 보듯 뻔하다.

정부광고 창구를 단일화하는 현행 제도는 장점이 많다. 무엇보다 정부광고의 거래 질서를 확립했으며, 정부기관에 대한 과도한 광고 유치 경쟁을 최소화해왔다. 규모의 경제를 통해 확보되는 협상력으로 정부광고의 효율을 높일 수 있다. 정부광고 수수료 수입의 대부분을 언론진흥 등 공적 영역에 투입해 왔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되는 대목이다. 최근 헌법재판소는 현행 수탁기관의 효율성과 전문성 등을 이유로 정부광고 대행 업무의 단일기관 위탁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법적 정당성을 인정한 셈이다.

해외에 눈을 돌려도 정부광고(홍보)의 창구 단일화가 대세임을 실감할 수 있다. 영국·프랑스·일본 등 주요 선진국은 중앙부처 한 곳에서 정부광고를 통합적으로 관리한다. 미국은 예외적으로 정부 부처에서 개별적으로 민간 광고회사와 직접 계약을 체결해서 독자적으로 광고를 시행한다.

정부광고 수탁기관을 복수로 늘렸을 때 예상되는 문제점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효율성 측면에서 모든 매체 광고의 통합적·유기적 관리가 어려워진다. 이로 인해 정부광고 예산의 효율적 집행이 불가능하게 되고, 복수 대행기관과 일해야 하는 공무원의 행정 부담이 대폭 증가할 것이다.

둘째, 같은 업무를 복수의 기관이 수행하면 예산이 낭비될 수밖에 없다. 현재 정부광고 수수료 재원으로 집행되는 다양한 언론 공익사업이 대폭 위축될 우려도 크다. 정부광고는 국민의 이해와 협력과 지지를 구하는 공공 소통 활동이다. 긴급을 필요로 하는 광고 비중도 크고, 25만 건에 육박하는 정부광고의 약 80%가 500만원 이하의 소액 광고다. 정부광고를 시행하는 정부부처·지자체·공공기관 등의 숫자는 3500여 곳에 이른다. 게다가 같은 기관에서도 정부광고 시행에 대한 의사결정을 과 단위로 주도하기 때문에 사실상 정부광고주는 5000여 곳이 넘는 셈이다. 수많은 정부광고를 실제로 관리·집행할 담당 공무원들의 고민도 깊어질 수밖에 없다.

결론적으로 이런 상황에서 정부광고 수탁기관을 복수로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는 건 정부광고 창구 단일화에 특별한 문제가 있기보다는 지역방송사 등의 경영난을 타개하려는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측면이 강해 보인다. 따라서 지금은 정부광고 대행을 미디어별로 쪼개자고 논의할 때가 아니다. 그 대신 현재의 수탁기관이 정부광고주를 위한 서비스를 어떻게 개선할지, 어려움을 겪는 영세한 지역 방송사 등을 어떻게 지원할지에 대해 다른 창의적 대안을 고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우는 어리석음은 꼭 피해야 할 것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병희 전 한국광고학회장·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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