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사드의 표적 암살로 최근 이란의 고위 인사 수십 명이 거의 동시다발로 피살됐다. 이스라엘의 드론이 유유하게 이란의 미사일 발사대와 이동식 트럭을 정밀 타격하는 동영상이 공개됐다. 모사드 요원이 이란의 고위 장성에게 “12시간 안에 가족과 함께 도망치지 않으면 모두 죽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는 음성 녹취록도 공개됐다. 이게 모사드다.
‘모사드를 배워야 국정원이 산다’ ‘국정원 개혁은 이스라엘 모사드가 최상의 모델.’
대통령도 국정원장도! 여당도 야당도! 보수도 진보도! 전문가도 일반인도! 정보기관 개혁이 도마 위에 오르면 한국에선 저마다 모사드를 얘기한다. 모사드의 정밀하고 대담한 작전에 국제사회도 경악을 금치 못한다. 각계에서 ‘한국형 모사드’를 주문하는데, 과연 가능할까?
수단과 방법 안 가리는 모사드
국정원법은 곳곳에 처벌 조항
정권 교체 때면 인사 혼란·내분
“워라밸 좋아졌다” 직원 자조도
국정원 개혁 모델로 떠오른 모사드
“누가 너를 죽이러 오거든 먼저 일어나 그를 죽여라.” 탈무드에 나오는 격언이다. 바빌로니아, 로마, 중세 유럽의 박해 속에서 형성된 유대인의 자기방어 원칙은 이스라엘의 안보 전략, 특히 모사드의 작전 철학에 영향을 미쳤다. 모사드의 암살 조직 ‘키돈’도 이런 작전 철학의 산물이다. 모사드의 암살 역사를 다룬 로넨 버그만의 『Rise and Kill First(먼저 일어나 먼저 죽여라)』도 여기서 영감을 얻었다.
현대전은 비대칭 전쟁, 사이버전, 국지전이 중심을 이룬다. 이런 형태의 전쟁에선 물리적 충돌 이전에 정보의 우위를 선점하는 것이 핵심 전략이다. 정보전의 본질은 위협을 사전에 식별하고 제거하는 선제적 대응이다. 즉 현대전의 핵심은 ‘먼저 일어나 먼저 대응하는 것’이다. 탈무드의 격언과 맞닿아있다.
2021년 6월 1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다비드 바르니아를 모사드 국장으로 임명했다. 네타냐후는 임명식에서 “이란의 핵무기 획득을 막는 것이 이스라엘의 가장 중요한 국가적 과제”라고 강조했다. 바르니아 역시 취임 직후 인터뷰에서 “우리의 가장 큰 안보 위협은 이란”이라며 모사드의 전략적 최우선 과제를 천명했다.
바르니아는 모사드를 정보 수집은 물론 분석과 실행까지 아우르는 통합작전 조직으로 탈바꿈시켰다. 그는 인간정보는 물론 드론, 사이버 공격, 인공지능 등 첨단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해 이란의 핵·미사일 개발 저지에 집중했다. 핵 과학자 암살 작전에서는 실시간 위치 추적과 원격 저격 시스템을 결합해 작전의 정확성과 신속성을 높였고 미사일 공장 폭발 작전에서는 사이버 해킹과 내부 폭파를 동시에 활용해 정밀한 복합 작전을 수행했다.
네타냐후가 바르니아에게 이란의 핵무기 개발 저지를 지시한 지 4년, 그는 이란의 핵 개발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시점’에 도달했다고 판단했다. 2025년 6월 13일 이스라엘은 ‘일어나는 사자(Rising Lion)’라는 작전명으로 이란에 대한 대규모 공습을 감행했다. ‘일어나는(Rising)’이라는 표현에는 탈무드의 격언에서 비롯된, ‘실존적 위협에 대한 선제적 대응’이라는 작전의 정당성 주장이 함축돼 있었다.
법적으론 존재하지 않는 조직
모사드는 목적이나 역할·임무·권한·예산을 규정하는 법률이 없다. 법적으론 존재하지 않는 조직이다. 이스라엘의 존립과 유대인의 생존을 위해서라면 합법과 불법, 수단과 방법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책임은 단 한 사람, 총리에게만 진다. 모사드의 역량은 총리의 리더십과 그가 임명한 국장의 전문성에 달려 있다.
1948년 건국 이후 총리 14명 중 네 명(이츠하크 샤미르, 에후드 바라크, 베냐민 네타냐후, 아리엘 샤론)이 정보기관이나 특수부대 출신이다. 모사드 역시 예외가 아니다. 창설 이후 13명의 국장 중 8명이 내부 출신이고 나머지 5명도 군 장성 출신이다. 학자나 정치인 출신은 단 한 명도 없다. 모사드는 철저하게 실전형 프로들에 의해 운영된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스라엘 최정예 특수부대 ‘사예렛 마트칼’에서 복무했다. 특히 1976년 엔테베 인질 구출 작전 중 형 요니 네타냐후가 전사한 사건은 안보를 개인의 삶과 직결된 문제로 인식하게 한 결정적 계기였다. 이러한 경험은 그가 모사드를 단순한 정보기관이 아니라 국가 전략을 집행하는 실질적 도구로 여기게 하였다. 최근 이란과의 충돌에서도 표적 제거, 사이버 공격 등 모사드를 활용한 비정규 작전을 통해 전면전을 피하면서도 전략적 압박을 이어가는 방식을 택했다.
총리도, 모사드 국장도 특수부대 출신
모사드 국장 바르니아 역시 사예렛 마트칼 출신으로 1996년 입사 후 유럽에서 침투 작전 등을 수행했다. 그는 취임 이후 선제적인 접근을 강화하며 이란 핵시설에 대한 비밀 작전을 확대했다. 또한 사이버와 특수작전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전쟁을 선호해 전면전 없이도 효과적인 억제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전략적 전환을 주도했다.
한국의 국가정보원은 모사드와는 전혀 다른 구조와 철학을 바탕으로 운영된다. 모든 활동은 법률에 따라 세세하게 규정되어 있으며 권한과 직무 역시 법적 테두리 안에 엄격히 제한된다. 특히 국가정보원법 24개 조항 중 8개, 즉 3분의 1이 ‘금지’와 ‘처벌’에 관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어 모사드가 보여 온 능동적 역할보다는 정보기관의 활동 통제와 억제에 방점이 찍혀 있다.
한국의 정보기관 운영은 제도뿐 아니라 인사와 운영 면에서도 모사드와는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어느 보수 정권 시절 정보 분야와 무관한 대통령 측근이 국정원장에 임명됐다. 회의는 전날 방영된 첩보 드라마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간부들은 원장의 관심을 끌기 위해 해당 드라마를 챙겨보는 것이 일상이었다. “정보 분야 경험이 전무한 분이 어떻게 이렇게 해박하십니까?”라는 아부성 발언이 경쟁적으로 오갔다. 원장은 취임 6개월도 채 안 되어 ‘대한민국 최고 정보전문가’라는 호칭에 익숙해졌다.
경험 없는 국정원장, 첩보 드라마 관심 진보 정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정보에 대한 전문성보다는 정치력이 앞선 인물이 국정원장을 맡았다. 전 세계 정보기관들이 초대형 이슈를 놓고 치열한 정보전을 벌이던 시기에 국정원이 국회에서 보고한 내용은 ‘로맨스 스캠, 해킹, 국제 마약, 금융 사기 예방’에 대한 것이었다.
주요 국가의 정보기관들이 초미의 정보전을 벌이던 이슈와 관련한 정보 활동 보고는 단 한 마디도 없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되는 인사 혼란은 조직의 기강을 무너뜨렸고 내부의 반목과 갈등은 점점 깊어졌다. 국정원 본연의 기능이 약화하면서 어떤 후배는 “워라밸이 좋아졌다”고 자조했고 또 다른 후배는 “공무원으로서 월급 받기가 미안할 지경”이라며 씁쓸해했다. 한국형 모사드? 언제쯤이면 가능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