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행정부의 국방비 증액 압박에 따라 미군의 3대 해외 주둔국인 일본(5만5000명), 독일(3만8700명), 한국(2만8500명)의 대응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달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2035년까지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의 5%(직접 군사비 3.5%+간접 비용 1.5%) 수준으로 증액키로 한 것을 일종의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하는 모양새다. 2025년 3국의 국방비와 GDP 대비 비중은 독일 624억 유로(약 99조원)·2.4%, 일본 9조9000억엔(98조원)·1.8%, 한국 61조2400억원·2.3% 수준이다. 참고로 국방비가 1000조원이 넘어 ‘천조국’이라고 불리는 미국의 2024 회계연도 국방비 비중은 나토 합의안에 못 미치는 GDP의 3.38%(9970억 달러)다.
한·일, 일단 “독자적 결정” 강조
GDP 1.8% 일본 부담 훨씬 커
한, 2035년까지 5.5~6% 늘리면
나토 목표 수준 3.5% 달성 가능
러 위협에 2029년 달성 추진하는 독일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에 대비해 서둘러 재무장을 진행 중인 독일은 2029년까지 국방비를 올해의 배 이상인 1525억 유로(244조5000억원)로 늘린다. GDP 대비 비율은 올해 2.4%에서 4년 만에 3.5%로 늘어나 다른 나토 회원국보다 무려 6년이나 조기 달성한다는 방침이다. 이같은 국방비 규모는 동서 냉전 시절인 1975년 이후 최대 규모로, 2029년 예상 정부 지출 5738억 유로(904조 8000억원)에서 국방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26.7%에 달한다. 앞서 독일 의회는 지난 3월 국방비와 인프라 투자비용에 한해 정부 부채한도 규정을 적용하지 않기로 기본법(헌법)을 개정했다.
독일 연방군은 최근 보고서에서 러시아군이 독일과 유럽에 ‘실존적 위협’이라고 경고했다. 보고서는 러시아가 서부 국경 근처에 병력을 늘렸으며, 2020년대 말까지 나토와의 대규모 분쟁에 대비해 산업구조와 지휘체계를 재편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브루노 칼 연방정보국장은 “최근 러시아가 나토의 집단방위 조항이 실제로 작동하고 있는지 시험하고 싶어한다”고 우려했다.
이런 나토의 움직임에 대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현재 GDP의 6.3%를 국방비로 지출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오히려 2026년 이후 3년간 국방비 감축 계획을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유럽이 국방비 지출을 늘리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는데 누구의 공격에 대비하는 것인가. 긴장을 고조시키는 쪽은 서방”이라고 비판했다.
일본, “퍼센트보다 내용이 중요” 난색 2024년 기준 독일에 이어 세계 GDP 순위 4위인 일본은 상대적으로 낮은 국방비 지출로 미국의 압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본은 기시다 후미오 전 총리 재임 당시 2027년까지 국방비를 GDP 대비 2%인 11조 엔(약 103조5000억원)으로 올린다는 5년 중장기 플랜을 발표했다. 올해는 GDP 대비 약 1.8%다.
최근엔 일본이 국방비를 기존 GDP의 3%에서 3.5%로 증액하라는 미국의 요구에 반발해 7월 초 개최 예정이었던 미·일 외교·국방 장관(2+2) 회의를 취소했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고,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이 이를 공식 부인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만큼 미국의 압박에 일본이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방증이다.
일본은 통상과 안보 이슈를 분리하고, 국방비 증액 규모는 독자적으로 판단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시바 시게루 총리는 “방위력 강화는 독립국가로서 해야 할 일이지만 처음부터 GDP의 몇 퍼센트 식은 아니고 필요한 것을 판단해 쌓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야시 장관도 “중요한 건 금액이 아니라 방위력 내용이란 생각에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일본은 주둔 미군 경비(일명 배려예산) 증액 압박도 받고 있다. 일본은 2022 회계연도부터 5년간 주일미군 주둔 경비로 총 1조551억엔(약 10조6000억원)을 부담키로 미국과 합의한 상태다. 2025 회계연도는 2274억 엔(약 2조3000억원)이다. 미·일은 2027년 3월 협정 종료를 앞두고 새 합의안을 마련하기 위한 협상을 진행해야 한다.
한국 국방비 GDP 2.3%…비중 높은 편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최근 “방위비 문제와 관련해 미국은 나토에 한 것과 유사하게 여러 동맹국에 비슷한 주문을 내는 상황이며, 그런 논의가 실무진 간에 오가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도 이미 청구서를 받았단 얘기다. 이와 관련해 외교부는 “국방비는 국내외 안보 환경과 정부 재정여건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우리가 결정해 나가고자 한다”고 밝혔다.
한국은 미국의 주요 동맹국 중 GDP 대비 국방비 비율이 높은 국가 중 하나다. 2025년 한국의 국방비는 61조6000억원으로, GDP의 2.32% 수준이다. 만약 2035년까지 GDP의 3.5% 수준을 달성하려면, 한국의 잠재 성장률(2.0%) 기준으로 매년 5.5~6% 수준으로 국방비를 증액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2020년대 한국의 국방비 연평균 증가율이 4.65%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일본에 비해선 그나마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 한 상황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엔 강력한 자주국방 드라이브에 따라 2018~20년엔 국방비 증가율이 7~8% 수준이었다. 2023년 확정한 중기 국방계획에 따르면 국방비를 연평균 7%씩 늘릴 경우 2030년대 초반엔 100조원 돌파가 예상된다.
한·미는 지난해 10월 2026년부터 적용하는 방위비 분담금을 전년도 대비 8.3% 인상한 1조5192억원으로 정하고, 2030년까지 소비자물가지수를 반영해 분담금을 늘린다는 내용의 방위비 분담금협정을 타결했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재협상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행정부는 1기 때 일본과 한국에 각각 80억·100억 달러를 방위비 분담금으로 요구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