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경제학상을 받고 연준 의장을 8년간 지낸 벤 버냉키의 대표업적 중 하나는 ‘금융 가속기(financial accelerator) 이론’이다. 이 이론은 자산가격과 신용공급이 상호작용하면서 경기변동을 증폭하는 메커니즘을 설명한다. 예를 들어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면 담보가치가 높아지고, 이를 바탕으로 가계와 기업은 더 많은 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추가 대출은 다시 부동산 수요와 가격을 끌어올리며, 자산가격과 신용이 함께 상승하는 순환이 형성된다. 일종의 ‘상승의 가속페달’이다.
신용과 자산가격의 순환 상승 가속
비이성적 기대 확산하며 시장 과열
신용 확대가 부동산시장 주도 양상
6·27 가계대출 규제 불가피한 선택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외환위기나 팬데믹 같은 외부 충격을 제외하면 역대 최저 수준인 0.8%에 그칠 것으로 예상되지만, 6월 넷째 주 아파트 매매가격은 6년 9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상승했다. 이는 자산시장의 움직임이 실물경제의 펀더멘털이 아니라 신용의 확대에 의해 주도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 다른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는 대표 저서 『비이성적 과열(irrational exuberance)』에서 낙관적 기대와 집단 심리가 자산 가격을 펀더멘털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과정을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자산 버블은 ‘가격은 계속 오른다’는 내러티브가 형성되고, 이를 믿는 시장 참여자들의 자기실현적 기대와 군집 행동 때문에 증폭된다. 특히 부동산시장에서는 ‘지금 사지 않으면 평생 못 산다’는 불안감이 빠르게 확산되며, 패닉바잉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처럼 대출과 자산가격이 맞물리는 금융 가속기의 구조 위에 비이성적 기대와 집단심리가 얹히는 순간 시장은 통제 불가능한 속도로 과열되기 시작한다. 지금의 서울 아파트 시장은 이러한 메커니즘이 극단적으로 결합한 사례이다. 이런 과열이 반복되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는 한국 사회가 부동산 시장 과열을 유발하기 쉬운 세 가지 제도적·구조적 조건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한국에만 존재하는 전세제도에 전세대출과 공적보증이 결합하면서 주택시장의 구조적 왜곡이 심화하고 있다. 전세보증금을 활용한 갭투자는 주택가격 상승의 핵심 요인으로 지목된다. 국토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갭투자가 1% 증가할 경우 수도권 주택 매매가격은 약 0.18% 상승한다. 또한 전세대출 보증이 1% 증가하면 전셋값 변동률은 0.18%p, 전세대출 자체가 1% 증가하면 매매가격 변동률은 0.37%p 상승한다. 즉, 전세대출과 보증은 단기적으로 전세가구의 주거비 부담을 완화하는 순기능이 있지만, 동시에 전세수요를 자극해 전셋값과 매매가격 모두를 끌어올릴 뿐만 아니라 갭투자가 용이한 환경을 제공한다. 결국 주거안정을 위한 정책이 오히려 집값을 상승시켜 수혜자의 부담을 궁극적으로는 증가시키는 ‘조삼모사’ 구조를 만든다.
둘째, 한국은 전국 인구의 절반가량이 수도권에 집중된 국가이며, 동시에 지방소멸 속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일본 도쿄권의 인구 집중도는 28%, 프랑스 파리 광역권은 18%에 불과하다. 반면 한국은 2024년 기준 전체 지방자치단체의 약 43%가 소멸위험 지역으로 분류되며, 출생자 수가 사망자 수보다 적은 인구 자연감소 현상은 2020년부터 본격화되었다. 이처럼 지방이 축소되면서 수도권 부동산 시장의 과열을 완충할 균형추가 사라졌고, 수도권이 자금과 기대심리까지 모두 빨아들이고 있다.
셋째, 미성숙한 연금시스템과 부족한 공적 노후보장 체계는 전 국민의 노후 불안을 확산시키고 있다. 일부 공공부문을 제외하면 평균 근속 기간이 짧고 퇴직 이후의 소득 공백이 커 많은 국민이 생애 소득을 스스로 보완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린다. 그 결과 부동산투자는 실거주 목적이 아니라 사실상 사적 생존전략으로 기능하게 되었고, 재테크 과잉 학습과 투자중독에 가까운 심리구조가 사회 전반에 뿌리내렸다. 이러한 심리는 최근 들어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더욱 집단화되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2024년 6월 개인투자자의 해외 순매수 1위는 나스닥 상장사인 스테이블코인 발행업체 ‘서클’로, 단 한 달 만에 8101억원이 투자됐다. 이는 2023년 2차전지 열풍과 마찬가지로 온라인 커뮤니티가 투자 판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노후불안과 집단심리가 결합한 새로운 투자 과열 현상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들은 하루아침에 나타난 결과가 아니기 때문에 한 번의 정책으로 바로잡을 수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미래세대를 포함한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우선으로 하는 원칙이다. 이번 6·27 가계대출 규제가 급브레이크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지금의 과열을 관리 가능한 위험으로 전환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전세대출과 보증, 갭투자의 구조적 취약성에 대해 오랜 시간 문제를 제기해온 전문가의 목소리에 더 일찍 귀를 기울였다면 이렇게 갑작스러운 제동이 필요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