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충북 청주시 흥덕구 정봉동에 있는 쌈 채소 농장. 송모(65)씨 등 60~70대 일꾼 6명이 하우스 안에서 상추 모종을 심고 있었다. 농장에서 20분~30분 떨어진 청주 시내에서 온 주부와 퇴직자들로, 충북도 농촌 일손 돕기 시책인 ‘도시 농부’ 사업에 참여한 사람들이다. 도시민이 근교에 있는 시설 하우스나 밭·과수원 등에서 파종·수확·적과 등 농작업에 4시간 참여하면 일당 6만원을 주는 사업이다. 시간당 급여가 법정 최저임금 시간급(1만30원)보다 50
%
가량 높다.
송씨는 “요즘은 날이 더워서 오전 5시 30분에 농장 일을 시작해 오전 9시 30분까지 한다”며 “농사일이 고된 건 사실이지만, '도시 농부'는 4시간밖에 일하지 않아 견딜 만하다. 가계에도 상당한 보탬이 된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최모(71)씨는 “도시 농부가 아니었다면 대부분 시간을 집에서 청소하거나 TV를 보며 보냈을 것”이라며 “농장에 나와 몸을 쓰다 보니 건강을 챙길 수 있고, 돈도 버니 일석이조”라고 말했다.
도시 농부 사업은 만성적인 농촌 인력난을 해결하기 위해 충북도가 2023년 전국 처음으로 시작했다. 정부는 외국인이 농촌에 단기 체류하며 일하는 계절근로자 수를 매년 늘리고 있지만, 농촌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일손 부족 문제는 매년 반복된다. 충북도에 따르면 충북 농업인구는 2000년 27만7534명에서 2023년 14만5053명으로 무려 47.7
%
나 감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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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자·주부 등 유휴인력 중개센터서 알선
강찬식 충북도 농업정책과장은 “도시에 살면서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유휴 인력을 농촌 일손에 보태면 일자리 창출과 농촌 인력난 해소에 도움이 될 것으로 봤다”며 “도시 농부는 내국인이라 농장주와 소통이 원활하고, 외국인과 달리 이탈 위험도 없다. 초보자도 2~3일 안에 숙련이 가능하도록 베테랑 도시 농부와 함께 배치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시 농부 참가 자격은 만 20세~75세에 이르는 청년과 은퇴자·주부 등 비농업인이다. 작물별 재배법 등 도시농부 관련 교육을 8시간 수료하고, 충북 각 시·군에 있는 도시농부 중개센터에 신청서와 교육 이수증을 내면 참여할 수 있다. 중개센터는 농가로부터 받은 일손 신청서를 토대로 작업 시기와 내용, 적정 인원 등을 고려해 도시 농부를 연결해 준다.
도시 농부는 기계화가 어려운 현장에 주로 참여한다. 수확기에 맞춰 감자·고추·옥수수·양파 등 노지 작물 수확에 집중적으로 투입되고, 실내 농장에선 방울토마토·애호박·버섯 재배 등에 참여한다. 사과·복숭아·포도·배 등 과수 농장에서 가지치기나 적과 작업을 한다. 농산물 가공공장과 선별작업장에도 도시 농부를 활용하고 있다. 쌈채소 농장 김종현(71) 대표는 “외국인을 고용하면 인건비 외에도 간식과 숙식 제공 등 부대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며 “지자체가 인건비의 40
%
를 부담하다보니 비용 걱정없이 도시 농부를 신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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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주 “도시 농부 덕에 일손 걱정 덜어”
참여자가 비농업인인 점을 고려해 근로 시간은 4시간으로 정했다. 충북도 농업경영팀 박상영 주무관은 “농사일은 수확기를 제외하면 굳이 8시간씩 고용하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며 “농사 경험이 없는 도시민의 체력과 일에 대한 집중도를 고려해 하루 근로시간을 4시간으로 했다”고 말했다.
인건비 6만원 중 40
%
에 해당하는 2만4000원은 도와 시·군이 지원하고, 나머지 3만6000원은 농가가 부담한다. 교통비 1만5000원은 지자체가 별도 지급한다.
김씨 농장에는 매일 4~6명의 도시 농부와 라오스에서 온 계절근로자 2명이 일하고 있다. 김씨는 “농촌에 일할 사람이 없다 보니 농작물 수확이 몰리는 5월~6월과 10월~11월 사이에 일꾼 구하는 게 하늘의 별 따기였다”며 “도시 농부 도입으로 일손 걱정을 덜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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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농부 신청자 4만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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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근로자 8.7배
도입 3년 차를 맞은 도시 농부는 누적 중개 건수가 39만2000여 명에 달할 정도로 인기다. 충북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도시 농부 인력중개 실적(지난달 27일 기준)은 17만3000여 명을 기록해 2024년 1년 치 중개 건수(15만1000명)를 이미 넘어섰다. 지난해 같은 기간(5만명)과 비교해 3배 이상 증가 수치다.
올해 도시 농부 사업에 참가 신청서를 낸 사람은 4만807명이다. 농촌 현장에 곧바로 투입할 수 있는 내국인 인력 풀이 4만명 이상 확보됐다는 의미다. 이는 법무부가 충북에 한해(2025년 기준) 배정한 외국인 계절근로자 수(4672명) 보다 8.7배나 많다. 현재 충북 11개 시·군에서 하루 평균 970여 명이 도시 농부로 투입되고 있다.
전체 참여자 중 55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은 60
%
정도다. 이필재 전 충북도 농업경영팀장은 “외국인 계절근로자는 급여의 80~90
%
를 본국에 송금하기 때문에 충북만 따져도 한해 400억원(5개월 체류 기준)이 넘는 국부가 외부로 유출된다”며 “도시 농부 사업은 비경제 활동 인구의 소득을 높여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