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체불 제로 시대'는 이재명 정부의 대표적인 노동 공약 중 하나다. 하지만 올해 들어서도 임금 체불은 5개월 만에 1조원에 육박해 빠르게 늘고 있다. 이에 국정기획위원회는 임금체불을 민생과제로 분류하고 주요 추진 과제로 검토하고 있다. 여당 역시 관련 입법에 적극 나서며 속도를 내고있다.
2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5월 말 기준 임금체불 규모는 9482억 원으로 집계됐다. 반년이 채 지나지 않았지만 이미 1조 원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같은 기간 체불 피해를 입은 노동자는 11만 7235명으로, 10만 명을 넘어섰다.
임금체불액은 ▶2022년 1조3472억 원 ▶2023년 1조7845억 원 ▶2024년에는 2조448억 원으로 해마다 급증세다. 현 추세가 이어질 경우 올해도 사상 최대치를 경신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작년부터 이어진 경기 침체의 여파로 체불 임금이 빠르게 증가하는 흐름이 계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임금체불 문제를 단순히 경기 불황 탓으로 돌리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의 임금체불 규모는 주요 선진국에 비해 크기 때문이다. 일본은 경제활동인구가 6957만 명으로 한국의 두 배가 넘지만, 연간 임금체불액은 1000억 원 수준에 불과하다. 한국의 체불 규모는 일본보다 약 20배 많고, 미국(3822억 원)보다도 크다. 다만 해고가 자유로운 미국과는 단순 비교가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윤동열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미국은 임금 체불이 발생하기 전에 고용 계약을 종료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정부 역시 한국의 임금체불 규모가 선진국에 비해 많은 것은 사실이라는 입장이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일본은 사업체 수나 경제 규모가 더 크지만 체불 규모는 오히려 적어, 한국의 임금체불이 선진국 대비 많은 것은 맞다"며 "일본은 임금 문제를 민사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고, 사회적으로도 체불에 대한 인식이 엄격한 점과도 관련이 있다”고 설명했다.
임금체불 문제는 국정기획위원회에서도 주요 국정 과제로 채택돼 신속 추진 과제 등으로 검토 중이다. 1일 열린 국정기획위원회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간담회에서도 '대지급금' 보장성 강화와 관련 재정 확보 방안이 논의됐다. 여당과 정부는 임금체불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국가가 먼저 체불 임금을 지급한 뒤, 사업주에게 구상권을 철저히 행사하는 구조를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대지급금’ 제도의 지급 요건을 대폭 완화해, 기존의 ‘퇴직자 대상 3개월분 임금’에서 재직자까지 포함하고 지급 기간도 최대 3년으로 확대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국회 환노위 관계자는 “민생 현안인 만큼 국회 차원에서도 입법을 서두르자는 분위기가 있다”며 “빠르면 7월부터 관련 논의가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제도 확대에 앞서 임금채권보장기금의 건전성 확보와 대지급금 회수율 제고가 선결과제라고 지적한다. 양승엽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대지급금을 단순히 확대할 경우, 고의적으로 임금을 체불하는 일부 사업주에게 국가가 도덕적 해이를 유발할 수 있다”면서 “제도 확대에 앞서 회수율을 높일 장치가 우선 마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홍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임금체불 증가와 함께 대지급금 지급액도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대지급금 지급액은 7242억 원에 달했고, 올해는 5월 기준 이미 2931억 원이 지급됐다. 반면 체불액에 대한 누적 회수율은 29.8%로 떨어지며 30% 선이 무너졌다. 체불액을 제대로 회수하지 못하면서 임금채권보장기금은 급속도로 고갈되는 상황이다. 실제 2020년 6798억 원 규모였던 기금은 2024년 들어 절반 수준인 3240억 원으로 감소했다.
박홍배 의원은 변제금 회수 시 국세 체납 절차를 준용하는 방안 등을 담은 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세금에 준해 환수하므로 속도도 빨라지고 환수 우선 순위도 높아진다. 박 의원은 “대지급금 회수율 저하는 임금채권기금 재정을 악화시켜 근로자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며 “국가가 지급한 체불 임금에 대해 법적 책임과 환수 의무를 명확히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국정기획위원회는 대지급금 회수를 전담할 기구 신설, 원청 기업에 하청업체 임금체불에 대한 연대 책임을 부과하는 방안 등도 함께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근로자 보호와 기업 현실 간의 균형 있는 접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윤동열 교수는 “임금체불 급증에는 고의적인 사업주도 있지만, 최근 체불 위기로 몰린 중소기업들의 어려움도 분명히 있다”며 “대지급금 등 생계 위기에 내몰린 근로자들에 대한 해법도 필요하지만, 기업들을 지나치게 옥죄는 방향으로 흐르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