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기가 고르지 못해 상품성이 떨어지는 '비정형과(못난이 과일)'인기가 뜨겁다. 고물가에 실속소비 트렌드가 확산하면서 대형마트, 백화점, 홈쇼핑 등 다양한 유통업체가 못난이 농산물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상반기(1~6월) 못난이 농산물 판매량은 업체별로 차이는 있지만 전년 동기 대비 30~5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2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못난이 농산물이 매출의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하며 주력 카테고리로 부상하고 있다. 롯데홈쇼핑은 못난이 사과를 브랜딩한 ‘아름아리 사과’를 올해 1~6월 누적 350톤(t) 가량 팔았다. 주문량으로 과일 부문 1위에 올랐다. 액수로 따지면 30억원 어치다.
쿠팡은 못난이 사과 2.5㎏에 땅콩버터 160g을 세트로 묶은 ‘사과 일병 구하기’ 기획 상품을 선보였다. 못난이 사과 소비량을 끌어올리기 위해 ‘단짠(달고 짠)’ 레시피를 상품화해 파는 것이다. 지난주 출시했는데 초도 물량이 완판됐다. 가을철 햇사과가 나올 때도 이 마케팅에 더 힘을 줄 계획이다. 땅콩버터 2, 3탄 시리즈로 헤이즐넛 크림과 땅콩아몬드 크림 등도 고민하고 있다.
못난이 농산물 중에도 사과 활용이 많은 건 상대적으로 생육 기간이 길어 장마와 폭염·태풍 등 기상 피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사과 최대 생산지인 경북의 경우 못난이 사과 비중이 매년 수확량의 30~40% 정도 차지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관계자는 “통상 사과 생육 기간이 4~11월이라 사실상 연중 내내 기후에 따른 피해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은 편”라며 “최근 이상 기후에 따라 비정형 사과 생산량도 늘고 있다”라고 했다.
못난이에 대한 수요는 갈수록 늘고 있다. 농촌진흥청이 수도권 지역 1300 가구를 조사한 결과 가구 평균 지난해 2만316원어치의 못난이 과일을 구매했다. 2022년(5679원)과 비교하면 40%가량 늘었다. 채소는 이 기간 2108원에서 2346원으로 11% 증가했다.
못난이 제품과 거리가 멀어보이는 백화점도 관련 행사를 주기적으로 열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은 2022년부터 ‘언프리티 프레시’라는 이름으로 애플수박과 머스크멜론, 파프리카, 자두 등의 못난이 과일을 최대 70% 싸게 판다. 행사 때마다 준비 물량이 당일 모두 완판된다. 업계 관계자는 “브랜딩부터 심혈을 기울이는 프리미엄 과일과는 다르지만 수요가 있다 보니 거래하는 산지에서 물량이 생기면 매대를 따로 빼서라도 행사를 연다”라고 했다. 아예 못난이만 취급하는 곳도 생겨난다. 컬리가 2023년 6월 못난이 채소만 모아 런칭한 브랜드 ‘제각각’과 못난이 농산물 구독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 ‘어글리어스’가 대표적이다.
못난이 마케팅은 기업 입장에서도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과 수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농가에는 하나의 유통망을 갖춰주고 우리로서도 새로운 시장이 열리는 것”이라고 했다.
이상 기후 추세에 따라 못난이 농산물 생산량은 향후 더 늘 것으로 예상된다. 국가에서 나서 관련 농산물 유통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자체에서는 관련 조례를 쏟아내고 있으며 최근 더불어민주당에서는 못난이 농산물 판매를 국가가 지원해야 한다는 내용의 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스페인과 영국 등 해외에서는 오래 전부터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취지로 외관 규격을 폐지하고 수퍼마켓에서 못난이 농산물을 폐기하지 않고 할인 판매해야 한다는 법을 시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