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머의 굴욕…'대폭 후퇴' 英복지개편안 겨우 첫관문 통과
당내 반란에 복지 삭감 핵심내용 빠져…정치적 타격, 재정 개선 난항
(런던=연합뉴스) 김지연 특파원 =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가 간판 정책으로 추진한 복지 개편안이 여당 내 집단 반발로 대부분 축소된 채 가까스로 의회 첫 관문을 통과했다.
복지 개편 법안은 1일(현지시간) 밤 하원 2차 독회에서 찬성 335표 대 반대 260표로 통과됐다고 영국 언론이 전했다. 집권 노동당 의원 49명이 반대표를 던졌다. 출범 1주년을 앞둔 스타머 정부에서 벌어진 가장 큰 '당내 반란'이다.
이 법안은 정부가 공공 재정의 여유를 확보하기 위해 장애인과 장기질환자를 위한 복지 수당인 개인자립지원금(PIP)과 보편지원금(UC) 건강 수당을 대폭 삭감하려고 발의한 것으로, 노동당 내에서 빈곤층이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를 샀다.
법안 통과에는 의석수 과반인 326명 이상 찬성이 필요한데, 노동당 의원 400여 명 중 126명이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나서자 스타머 총리는 지난달 말 어쩔 수 없이 PIP 삭감을 신규 신청자에게만 적용하기로 하는 등 큰 폭의 양보안을 내놨다.
그런데도 당내 반란을 완전히 잠재우지 못했고, 2차 양보안이 나왔다. 스티븐 팀스 노동연금부 사회보장·장애 담당 부장관은 이날 하원에서 PIP 기준 변경은 자신이 맡은 PIP 관련 검토가 나올 때까지 보류하겠다고 약속했다.
법안을 조건부로 지지했던 제1야당 보수당의 케미 베이드녹 대표는 법안의 핵심 부분이 모두 빠지면서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됐다"며 "노동당은 숙제를 다시 해서 진지한 법안을 가지고 돌아와야 한다"고 비판했다.
하원 2차 독회 통과로 1차 관문은 넘게 됐지만, 수많은 여당 의원이 반기를 들었고 법안이 대폭 수정으로 사실상 힘을 잃어버린 만큼 스타머 총리와 노동당 지도부의 권위에는 큰 상처가 난 것으로 평가된다.
BBC방송은 "정부가 이 사안에 대해 통제력을 완전히 잃어버렸고 의회에 끌려다녔다"며 이번 일을 "스타머의 굴욕"이라고 꼬집었다. 일간 텔레그래프는 "웃음거리"라고 했고, 가디언은 "총리와 지도부를 멍들게 한 사건"이라고 평했다.
스타머 정부는 정치적 타격을 입었을 뿐 아니라 복지개편 대폭 후퇴로 절실하게 필요한 재정 개선을 이루지 못하게 됐다는 더욱 큰 현실적 문제도 안게 됐다.
정부는 애초 복지개편안을 발표할 때 그에 따른 예산 절감 효과를 50억 파운드(9조3천억원)로 추정했다.
이는 불어나는 복지 비용을 줄이기 위한 것이었다. 연간 장애나 건강 관련 복지 수당 지출은 연 650억 파운드(121조5천억원)이며 이는 2029년까지 1천억 파운드(187조원)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공공 재정 압박 속에 국방비마저 증액해야 하는 처지다.
개편안 후퇴로 남게 된 예산 절감 요소는 UC의 건강 관련 수당을 2026년부터 신규 수급자에 대해 50% 가까이 삭감하는 방안 정도다.
게다가 정부는 이미 연금 수급자의 겨울 연료비 지원을 대폭 삭감하기로 했다가 여론 악화에 부닥치자 후퇴해 지원을 대부분 복구하기로 했기에 정부 지출 계획에 연타를 맞게 됐다.
싱크탱크 재정연구소(IFS)의 헬렌 밀러 부소장은 "부처별 예산 계획은 사실상 정해졌고 정부가 연금 수급자와 노동 연령대의 복지 혜택 삭감 계획을 철회했기 때문에 증세 가능성이 더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또 "수십억 파운드의 (예산) 숫자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이 정부의 재정적 신뢰도가 어떻게 인식될지에 미칠 잠재적 영향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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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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