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체불 제로 시대’는 이재명 정부의 노동 공약 중 하나다. 하지만 올해 임금 체불은 빠르게 늘고 있다.
2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5월 말 기준 임금체불 규모는 9482억원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체불 피해를 입은 노동자는 11만7235명으로, 10만 명을 넘어섰다.
임금체불액은 ▶2022년 1조3472억원 ▶2023년 1조7845억원 ▶2024년에는 2조448억원으로 해마다 급증세다. 현 추세가 이어질 경우 올해도 사상 최대치를 경신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작년부터 이어진 경기 침체의 여파로 체불 임금이 증가하는 흐름이 계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단순히 경기 불황 탓으로 돌리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은 경제활동인구가 6957만 명으로 한국의 두 배가 넘지만, 연간 임금체불액은 1000억원 수준에 불과하다. 한국의 체불 규모는 미국(2024년 기준 3822억원)보다도 크다. 물론 단순 비교는 힘들다. 윤동열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미국은 임금 체불이 발생하기 전에 고용 계약을 종료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도 “일본은 임금 문제를 민사소송으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고, 사회적으로도 체불에 대한 인식이 엄격한 점과도 관련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한국의 임금체불 규모가 주요 선진국에 비해 많은 것은 문제라고 인정한다. 이에 국정기획위원회에서도 임금체불 문제가 주요 국정 과제로 채택될 전망이다. 1일 열린 국정기획위원회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간담회에서도 ‘대지급금’ 보장성 강화와 관련 재정 확보 방안이 논의됐다. 여당과 정부는 임금체불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국가가 먼저 체불 임금을 지급한 뒤, 사업주에게 구상권을 철저히 행사하는 구조를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대지급금’ 제도의 지급 요건을 대폭 완화해, 기존의 ‘퇴직자 대상 3개월분 임금’에서 재직자까지 포함하고 지급 기간도 최대 3년으로 확대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문제는 대지급금 지급액도 급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박홍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대지급금 지급액은 7242억원에 달했고, 올해는 5월 기준 이미 2931억원이 지급됐다. 반면 체불액에 대한 누적 회수율은 29.8%로 떨어지며 30% 선이 무너졌다. 체불액을 제대로 회수하지 못하면서 임금채권보장기금은 급속도로 고갈되는 상황이다. 실제 2020년 6798억원 규모였던 기금은 2024년 들어 절반 수준인 3240억원으로 감소했다.
양승엽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대지급금을 단순히 확대할 경우, 고의로 임금을 체불하는 일부 사업주에게 도덕적 해이를 유발할 수 있다”면서 “제도 확대에 앞서 환수율을 높일 수 있는 정책적 장치가 우선 마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정기획위원회는 대지급금 국세체납절차 도입, 전담 기구 신설, 원청 기업에 연대 책임을 부과하는 방안 등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홍배 의원 등 여당도 관련 법안을 준비 중이다.
윤동열 교수는 “임금체불 급증에는 고의적인 사업주도 있지만, 최근 체불 위기로 몰린 중소기업들의 어려움도 분명히 있다”며 “대지급금 등 생계 위기에 내몰린 근로자들에 대한 해법도 필요하지만, 기업들을 지나치게 옥죄는 방향으로 흐르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