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에 두른 알록달록한 두건(반다나)이 전매 특허인 디아나 슈나이더(21·세계 15위·러시아)는 2일(한국시간) 열린 테니스 메이저대회인 윔블던 여자 단식 1회전에 두건을 쓰지 않고 출전했다. 영국 미러는 “(윔블던의) 엄격한 복장 규정 탓에 팬들은 두건을 쓰고 뛰는 슈나이더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고 전했다. “엄격한 복장 규정”이란 머리부터 발끝까지 흰색만 착용해야 하는 이른바 ‘올 화이트(all white)’ 드레스코드다. 머리띠와 모자, 심지어 양말까지 포함하는 규정이다.
반발도 있었다. 앤드리 애거시(미국)는 복장 규정에 반대해 3년간(1988~90년) 대회를 보이콧했다. 1991년에도 노란색 고글을 쓰고 참가하는 방식으로 반대 뜻을 드러냈다. 2007년 타티아나 골로방(프랑스)은 빨간 속바지를 입는 방식으로 규정에 반기를 들었다. 주최 측은 골로방을 징계하려다가 “속옷까지 규제한다”는 비판 여론에 밀려 포기했다. 2013년 로저 페더러(스위스)는 주황색 바닥의 운동화를 신고 1회전에 출전했고, 주최 측은 2회전부터 흰 바닥 운동화로 바꿔 신게 했다.
선수들은 알록달록한 아름다움을 포기한 대신 디자인과 소품 등의 차별화로 개성을 뽐낸다. 특히 스포츠복 브랜드는 자신의 후원 선수에게 윔블던만을 위한 유니폼을 특별 제작한다. 올해도 브랜드들의 경쟁은 승패 못지않은 볼거리다.
여자 세계 1위 아리나 사발렌카(27·벨라루스)는 라운드넥 민소매에 스커트를 선택했는데, 다소 평범하다. 대신 손톱을 잔디 코트처럼 초록으로 물들였고, 왼팔엔 알록달록한 팔찌를 착용했다. 서브를 위해 왼손으로 공을 코트에 튕길 때 손톱과 팔찌가 고스란히 중계 화면에 잡힌다. ‘테니스 아이돌’인 영국의 엠마 라두카누(23·40위)도 민소매에 스커트를 선택했다. 대신 선캡과 손목보호대로 포인트를 줬다. 화룡점정은 목걸이다. 십자가 모양 다이아몬드 목걸이로, 추정 가격이 수천만 원대다.
마르타 코스튜크(23·26위·우크라이나)는 파격을 택했다. 등과 배를 드러낸 과감한 크롭티(일명 배꼽티)를 입었다. “활동성과 인기를 모두 잡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마리아 사카리(30·77위·그리스)는 원피스를 착용해 눈길을 끌었다. 경기 중 상의가 땀에 젖으면 갈아입어야 하는데, 사카리는 상·하의를 모두 갈아입어야 한다. 패션을 위해 불편함을 감수한 것이다.
미국의 ‘신성’ 코코 고프(21·2위)는 MZ세대다운 패션 센스가 돋보이는 선수다. 화려한 레이스와 리본이 달린 파티 드레스 스타일의 민소매 상의를 입었고, 스커트도 하늘거리는 스타일이다. 패션쇼에나 등장할 법한 모습이었다. 고프는 이날 여자단식 1회전에서 다야나 야스트렘스카(25·42위·우크라이나)에 0-2(6-7, 1-6)로 패해 탈락하면서 더는 패션을 뽐낼 수 없게 됐다.
윔블던이 ‘올 화이트’ 드레스코드를 고수하는 건 148년 역사를 자랑하는 최고 권위 대회라는 자부심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 목소리도 점점 더 커지는 상황이다. 테니스 레전드 빌리 진 킹(미국)은 최근 데일리 텔레그래프 인터뷰에서 “윔블던 복장 규정 때문에 답답해 죽겠다. 모든 선수가 같은 색 옷을 입고 뛰니, 시청자는 누가 어떤 선수인지 알기 어렵다. 전통은 바뀔 수도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