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30대 A씨는 지난해 시중은행에서 사업자 신용대출을 받으려다 거절 당했다. 개인 신용점수가 800점대 초반이었지만, 이제 막 개업한 ‘초보 사장님’인데다 이미 3건의 대출을 보유한 다중채무자라서다. 하지만 카카오뱅크는 A씨에게 1000만원을 내어줬다. 카드 매출 정보, 사업장 정보, 캐시노트앱을 통해 수집된 시간대별 매출 정보 등을 종합적으로 심사한 결과 A씨의 사업역량이 뛰어나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같은 비금융(대안) 정보를 활용한 신용평가가 활발해질 전망이다. 대표적으로 카카오뱅크는 비금융 정보를 활용한 신용평가모형인 ‘카카오뱅크 스코어(카뱅스코어)’를 은행권 최초로 개발해 2022년 12월부터 대출 심사에 활용하고 있다. 연봉·신용카드 사용액 등 기존 금융정보 중심의 신용평가로는 대출을 받기 어려웠던 중·저신용자, 씬파일러(Thin Filer·금융 이력 부족자), 개인사업자 등 금융 취약계층에게 ‘금융 사다리’를 놓아주기 위해서다. 올해 상반기까지 2년 6개월간 전체 중·저신용 대출의 15%(건수 기준)가 카뱅스코어로 추가 승인을 받았다. 누적 공급액으론 약 1조원이다.
카카오뱅크 관계자는 “대안신용평가 모델을 고도화한 영향으로 연체율은 낮다”고 말했다. 카카오뱅크는 올해 4분기 70여개 금융사를 시작으로 외부 기관에도 대안신용평가 모형을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케이뱅크도 지난 4월 국내 통신3사(SK텔레콤·KT·LG유플러스) 가입자 약 4800만명의 통신비 납부 이력, 데이터 사용량 등으로 신용을 평가하는 ‘이퀄(EQUAL)’ 서비스를 자체 신용평가모형에 도입했다. 토스뱅크도 중·저신용자 중 안정적인 상환능력 보유자를 선별하기 위해 모형을 고도화하고 있다.
핀테크 업체인 네이버페이는 결제 내역·스마트스토어 거래 데이터 등을 기반으로 한 ‘네이버페이 스코어’를 만들었다. 주로 소상공인·자영업자 대상 신용평가를 정교화했다. 이를 통해 그간 대출 심사에서 불이익을 받았던 사용자의 32.1%가 금리를 더 낮추거나 한도를 늘렸다.
조재박 부사장은 지난달 미디어데이에서 “책을 정기적으로 사는 고객은 똑같은 신용 점수라고 하더라도 연체가 발생할 확률이 더 낮다”며 “이는 기존 금융에서 증명하지 못했던 데이터적 가치”라고 말했다. 7월부터는 금융위원회·서울보증보험과 협력을 맺어 정책금융상품인 사잇돌대출 심사에도 적용하기로 했다.
‘K-핀테크’ 기업이 개발한 대안신용평가시스템은 해외에서도 각광받고 있다. 밸런스히어로는 인도인들이 급여를 현금으로 받다보니 신용평가 데이터가 부족하다는 점을 파고 들었다. 스마트폰 메시지(SMS)에 포함된 다양한 결제·거래 정보를 인공지능(AI)으로 분석해 신용도 평가에 활용하기 시작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비대면 대출의 경우 신용등급이 우수한데 급여 소득이 적다면 대안평가로 넘어갈 수 있다”며 “소액결제 내역, 공공요금 납부 이력 등으로 상환 능력을 심사해 대출금리를 좀 낮춰주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한계도 있다. 대안신용평가 모형을 고도화하는 데는 많은 비용과 노력이 드는 데다, 개인정보보호 등 문제로 정보 접근에 제약이 있다. 조진현 카카오뱅크 신용리스크모델팀장은 “쿠팡의 등장으로 오프라인 유통정보의 커버리지가 하락했다”며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금융사들이 의미 있는 대안정보를 안전하면서도 손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