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1터미널과 2터미널을 잇는 공항연결로. 두 터미널 사이 15㎞ 구간에서 시범 운행 중인 자율주행 ‘로보셔틀’을 탔다. 15인승에 열두어 명을 태운 로보셔틀이 1터미널을 출발했다. 제한속도 40㎞를 알리는 표지판을 지나 램프 구간에 진입하자 “제한속도가 변경되었습니다”라는 알림이 차에서 흘러나왔다. 핸들을 잡은 손도, 브레이크를 밟는 발도 없었지만 램프 곡선 구간에 맞춰 차는 핸들을 틀었고, 속도도 알아서 줄였다.
시속 80㎞ 고속주행 도로에 들어서자 로보셔틀은 ‘자체 판단’으로 서행하던 앞 차량을 추월했다. 왼쪽 깜빡이를 켜더니 2차로에서 1차로로 차선을 바꿔 가볍게 버스를 앞지르고 2차로로 돌아왔다. 웬만한 초보 운전자보다 로보셔틀의 ‘담력’이 좋아 보였다.
다만 문제는 예상치 못한 데서 발생했다. 2터미널에서 1터미널로 돌아오는 구간을 출발한 지 5분 만에 현재 주행 상황을 알려주는 자율주행 장비들이 하나둘 꺼지기 시작한 것. 결국 운전석에 앉아 있던 보조 운전자가 자율주행 모드를 중단하고 ‘수동 주행’으로 전환했다. 로보셔틀은 현대차의 대형 밴 ‘쏠라티’를 개조해 라이더·레이더·카메라 등 20여 개 장비와 자율주행 제어 시스템을 탑재해 운행하는데, 운행 중 배터리 발전기 문제로 전압이 낮아지면서 자율주행 장비 전원이 꺼진 것이다.
현대차는 “보조 운전자가 있어서 안전 문제는 없었다”며 “이번 상황은 배터리 발전기 문제이지 자율주행 기술과는 관계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한 자율주행 기술업계 관계자는 “차량과 자율주행 기능을 최적화하는 건 기본인데, 시스템이 꺼졌다는 건 설계에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현대차그룹은 한국에선 자회사 포티투닷과 남양연구소를 중심으로, 미국에선 자회사 모셔널을 중심으로 자율주행 기술을 개발 중이다. 2022년 현대차그룹이 인수한 포티투닷은 지난해 말 청계천 일대를 오가던 자율주행 셔틀 사업을 중단하고 SDV(소프트웨어 중심 차량)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현재 100개 이상 탑재되는 차량 제어 장비를 최소화하고 소프트웨어로 통합 제어하는 차량을 개발, 내년까지 ‘SDV 페이스카’를 선보일 계획이다. 이를 바탕으로 2027년까지 레벨2+(플러스) 자율주행을 상용화할 계획을 지난 3월 내놨다.
자율주행 레벨 2는 운전자 보조 시스템이고 통상 레벨3부터 자율주행으로 보는데, 이 중간 단계 제품을 선보이겠단 얘기다. 현대차 출신 자율주행업계 관계자는 “해외에서는 레벨4 기술 상용화에 성공한 기업들이 이미 나온 상황이라 2+단계 상용화 계획은 빠른 편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2022년 현대차그룹이 미국 자율주행업체 앱티브와 합작 투자한 ‘모셔널’은 미국서 로보택시 시범 서비스를 중단하고 자율주행 상용화 계획을 내년으로 연기했다. 2조원 이상을 투자하고 지난해 6600억원가량을 유상 증자한 데 이어 5월 이사회에서도 증자를 승인하는 등 꾸준히 자금을 투입했지만, 여전히 숨고르기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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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스타트업 위주로 자율주행 시장 키워…정부 차원 지원 필요”
업계 관계자는 “차량 제조사 입장에서는 한국에선 자율주행에 대한 사회적인 합의나 규제가 정리돼 있지 않아 상용화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며 “빠른 자율주행 기술이 아닌, 안전을 우선한다는 전략적 판단일 수 있다”라고 말했다.
로보택시 서비스 경쟁이 이미 시작된 미국·중국과 달리 한국은 제한된 노선을 운행하는 대중교통 셔틀 형태로 자율주행이 진행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기술력뿐 아니라 차량을 개발·운행할 수 있는 자본력에서 한국이 한참 밀린다는 평가다. 구글 계열사인 웨이모는 지난해 10월 56억 달러(약 7조6000억원)를 유치해 누적 투자금만 111억 달러(15조원) 이상이다.
대기업도 주춤한 상황에서 한국은 스타트업들이 정부 지원 사업으로 자율주행 시장을 넓혀가고 있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투자금(820억원)을 유치한 스타트업은 서울·경기 안양 등 지역에서 자율주행 버스 서비스를 시범 운영 중인 오토노머스에이투지다. 유민상 오토노머스에이투지 최고전략책임자(CSO)는 “웨이모처럼 한국에서 로보택시를 1000대씩 돌릴 수 있는 자본을 갖춘 기업은 없다”며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게 보급이 되려면 전기차 보조금처럼 정부 차원에서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규제 환경도 개선돼야 한다. 유 CSO는 “올해 3월부터 레벨4 자율주행차 성능인증제도가 실시됐지만, 원격 주행을 금지하고 있는 현행 법이 바뀌어야 무인자율주행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