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우리 정부만큼 새 산업부문 창출에 능한 정부도 없다. 정부는 AI와 반도체 분야에 100조원을 투입하며 산업 창출에 다시 시동을 걸고 있다. 정부의 비전과 하정우 AI미래기획수석에 거는 기대가 크다.
100조원은 많아 보인다. 하지만 우리가 갈 길은 100조원을 투자해 그 100배인 1경원을 버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유니콘(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의 비상장 스타트업)이나 매그니피센트 세븐(7대 대형기술주, M7)이 나와야 한다.
방향은 두 갈래다. 대기업 중심의 ‘한국식’ 모델과 스타트업 중심의 ‘미국식’ 경로다. 공통분모는 소프트웨어 경쟁력이다. 한국은 반도체·조선·자동차 등 제조업에서는 세계적 기업을 키워냈지만, 소프트웨어 분야에서는 수백조 원을 R&D에 쏟고도 여전히 글로벌 기업이 없다.
물론 대기업에서 출발한 글로벌 소프트웨어 리더가 나오지 말란 법은 없다. 삼성·SK·현대·LG에서 유래한 유니콘·M7이 자연스러운 지름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대기업을 한국형 M7의 걸림돌처럼 여긴다.
비판의 핵심은 이렇다. 대기업들은 자회사 체계를 통해 IT·광고·물류·시스템통합(SI) 등 비핵심 영역의 매출을 내부에서 돌려 확보한다. 일명 ‘캡티브 마켓(captive market)’에 안주한 계열사들은 외부 경쟁 없이 수익을 보장받는 대신, 기술 혁신이나 글로벌 확장에 소극적이 된다.
이런 비판에 분명 억울한 내용도 있을 것이다. 이에 방어 논리를 개발하기보다는 경쟁의 바다로 나아가야 한다. AI의 시대는 스타트업의 시대다. 대기업의 AI 부문은 스타트업보다 더욱 날렵하고 창의적이어야 한다.
기존의 한국식에 미국식을 성공적으로 이식해야 한다. 혁신적인 스타트업이 삼성에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 성공 사례를 밑천으로 현대차·SK·LG·한화로 고객을 넓히며 성장하는 시나리오를 정착시켜야 한다. 자금 지원을 받은 스타트업들이 ‘국내에선 팔 곳이 없으니 해외로 나가야 한다’는 답답한 하소연만 반복하다 성장이 멈추는 일을 막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 대기업들은 외부 솔루션 도입에 극도로 ‘적극적’이 되어야 한다. 대기업에 팔 수 있어야 유니콘이 탄생할 수 있다.
외부 스타트업의 솔루션을 도입하거나 유망 기업을 인수·합병할 경우 상속세 감면 등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식의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 대기업 스스로 경쟁력 강화를 위해 외부의 최고 기술을 적극적으로 수혈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AI 100조 투자의 성공 여부는 대기업 AI 부문의 ‘스타트업화(化)’와 스타트업이 진입할 시장을 여는 데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