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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복룡의 신 영웅전] 스탈린의 생각과 좌절

중앙일보

2025.07.02 08:12 2025.07.02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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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75년을 맞으며 ②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스탈린(사진)은 아시아계인 조지아(그루지야)에서 가난한 신기료의 아들로 태어났다. 미성을 타고난 그는 젊어서 신학교를 다닌 성가대의 스타였다. 세례명은 요셉이었다. 그러던 그가 『자본론』을 읽고 공산주의자가 되었다.

스탈린은 혁명기에 에카테리나라는 여인을 만나 아들 하나를 얻었다. 궁핍한 생활 속에서 그는 레닌에게 보고서를 쓰고 침실에 돌아오니 아내는 어린 아들을 가슴에 품고 숨져 있었다. 그는 “그 여인이 내 가슴속의 모든 연민을 가져갔다”고 회고했다.

공산당에 입당한 스탈린은 ‘프라우다’의 편집장이 된 것으로 보아 글재주도 있었다. 레닌의 후광을 받으며 소련의 집권자가 된 그는 잔혹했다. 대부분의 독재자가 그렇듯이 이런 정치인은 고소공포증 때문에 비행기를 타지 않는다. 그는 아마도 김일성처럼 300만 명 정도의 목숨을 빼앗아 갔을 것이다.

한국전쟁의 기원과 관련한 종래의 학설에 따르면, 스탈린이 세계 공산화의 일환으로 김일성의 등을 밀어 개전했다고 주장하지만, 김일성이 스탈린을 졸라 한국전쟁을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제2차 세계대전의 상처와 피로를 극복하지 못한 스탈린으로서는 미국과의 대결이 내키지 않았다. 소련으로서는 극동에서 북한의 공산화와 남진 기지를 확보한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그러나 초전에 대승을 거두면 미국이 참전할 겨를이 없을 것이라는 김일성의 말을 믿어, 중공이 지원한다는 조건으로 개전을 승인했다. 그래서 스탈린은 소련이 한국전쟁에 연루되었다는 흔적을 끝까지 숨기고 싶었고, 요원으로 소련군이 참전할 경우에는 기초적인 암호를 한국어로 구사할 수 있도록 훈련했으며, 복장도 북한군의 것을 입었다. 그런 점에서 한국전쟁에서 김일성의 지위는 꼭두각시가 아니라 적극적인 행위자였다. 김일성의 의지가 없었더라면 한국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 (계속)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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