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중앙일보

광고닫기

[정재훈의 음식과 약] 섞어 마시면 더 취할까

중앙일보

2025.07.02 08:14 2025.07.02 13:34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기사 공유
정재훈 약사·푸드라이터
술자리에서 다양한 술을 섞어 마시는 일은 흔하다. 맥주로 시작해 소주·와인·위스키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지기 마련이다. 많은 이들이 술을 섞어 마시면 더 취한다거나 숙취가 심해진다고 말하지만, 과연 과학적으로도 그럴까?

맥주·샴페인처럼 탄산이 들어간 술, 또는 콜라나 토닉워터 같은 탄산음료를 믹서로 사용한 칵테일을 마실 때 더 빨리 취하게 될 수 있다. 이산화탄소 가스가 위를 팽창시키고 위 배출을 빠르게 하여 알코올 흡수를 촉진시키기 때문이다. 취기가 일찍 오르면 아무래도 음주량 조절이 더 어려워지기 쉽다. 다만 모든 사람에게 이런 효과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며 개인 차가 있다. 2007년 영국 연구에서 탄산수와 섞은 보드카를 마셨을 때 참가자 21명 중 14명은 물에 탄 보드카보다 알코올 흡수가 빨라졌고 7명은 차이가 없거나 더 느려졌다. 스트레이트 보드카보다 물이나 탄산수에 희석했을 때 흡수 속도가 더 빨랐다.

술을 섞어 마시면 도수를 파악하기 힘들어서 음주량 조절이 어렵다. 사진은 맥주에 소주를 섞는 모습. [중앙포토]
술을 섞어 마시면 숙취가 더 심해지는 이유는 술 속에 들어있는 콘제너(congener)라는 화학물질 때문일 수 있다. 발효나 증류 과정에서 생기는 이들 화학물질은 술의 향·맛·색을 만들어내지만 동시에 숙취의 주범이기도 하다. 특히 럼·브랜디·버번 같은 어두운 술에는 콘제너가 많다. 하지만 맑은 술이라고 무조건 안심할 수는 없다. 데킬라처럼 투명한 술에도 콘제너 함량이 높은 경우가 있다. 분명한 사실은 다양한 술을 섞어 마실 경우 여러 종류의 콘제너가 동시에 체내에 들어와 숙취가 더 심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술을 섞는 과정에서 과음으로 이어지기 쉽다는 점이다. 술마다 도수와 에탄올 함량이 다르다. 주종이 한 가지일 때는 잔수를 세어가며 마실 수 있다. 반면에 섞어 마시면 자신이 얼마나 마셨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다른 사람이 만들어주는 폭탄주나 칵테일을 마실 때는 도수를 파악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또한 사람은 같은 맛에는 쉽게 질리지만 맛과 향이 다양하면 뇌의 포만감 신호가 늦게 와서 더 많이 섭취하게 된다. 이를 감각 특정적 포만이라고 하는데 술에 같은 원리가 적용될 수 있다. 여러 가지 술을 섞어 마시면 자기도 모르게 과도한 알코올을 섭취할 가능성이 높다. 과거 적당한 술이 건강에 유익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더 많은 연구 결과가 축적되면서 건강상 위험이 강조되고 있다. 알코올은 DNA 손상을 일으켜 암 발생 위험을 높인다. 과음은 심장병·간질환·우울증과 같은 질환 위험 증가와도 관련된다. 술을 섞어 마시는 행위 자체가 건강에 더 해롭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얼마나 마셨는지 분별하기 어려워지고 음주량이 늘어나기 쉽다. 술을 줄이려고 노력 중이라면 섞어 마실 때일수록 더 조심하는 게 좋다.

정재훈 약사·푸드라이터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