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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교육 혁신의 골든타임

중앙일보

2025.07.02 08:32 2025.07.02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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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미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AI가 가져온 전 지구적 파장이 거세다. 거대언어모델(LLM) 기반 인공지능 중 글로벌 선두주자인 챗GPT의 유료 구독자 수는 한국이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라고 한다. 주변을 관찰해 보면 업무 처리에 있어 활용하는 것은 물론이요, 제법 많은 사람들이 하루에 몇 시간씩 인공지능과 대화를 나누거나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기 어려운 내밀한 인생 상담이나 심리 상담을 주기적으로 받기도 한다. 특히나 청년층의 일상에는 이미 깊숙이 들어와 있다.

증등학교든 대학교든 현재 학교에서 주어지는 글쓰기 과제의 대부분은 인공지능으로 그야말로 뚝딱 해결된다. 그렇다면 과제물을 채점하는 것은 이미 의미 없는 일이다. 성과물의 품질이 실제 학생들이 글쓰기 과정에서 얼마나 사고하고 노력하였는지와 연관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성과물의 품질로 성적이 매겨지는 한, 학생들 입장에서는 인공지능을 쓰지 않고 스스로 과제를 할 유인이 적다.

인공지능 파장 닥칠 미래의 교육
질문하는 힘 기르기가 요체 될 것
과감히 수능 폐지 논의해 볼 시점
개인의 성장 돕는 AI 정책 나와야

글쓰기가 훈련인 이유는 다양한 자료를 접하면서 정보를 취사선택하고 불필요한 것을 제쳐나가기도 하면서 이들을 엮어 주체적으로 논리를 세워보고 새로운 사고를 정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은 이 과정을 건너뛰고 목적지에 도달하게 한다. 수업이나 평가방식이 어정쩡하게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오히려 인공지능의 확산은 학생들의 학습역량을 크게 저하할 가능성도 있다.

AI와 함께 사는 세상에서 교육은 어떠해야 하는가에 관해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교육 현장마다 AI 시대에 필요한 변화들이 다르겠지만, 질문에 답할 줄 아는 사람을 길러내는 것에서 거꾸로 주어진 답에 대해 꼬리를 물고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쪽으로 교육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인공지능이 내어주는 답은 프롬프팅이라 불리는 질문의 질과 구성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개인 간 성과의 격차는 지식의 양이나 학위의 숫자가 아니라 스스로 사고하고 질문하는 힘일텐데 지금처럼 수능을 중심에 둔 교육이 지속되는 한 정답 찾기와 삐끗하지 않기의 반복 훈련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인공지능 서비스의 첫 화면은 빈칸이다. 포털의 첫 화면처럼 콘텐트가 가득 주어지지 않는다. 이 빈칸에 제대로 된 질문을 기입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에게 인공지능은 어마어마한 무기가 된다. 접해보지 못했던 분야와의 융합적인 사고를 시도하기도 한층 쉬워졌다. 단, 자기만의 호기심과 알고자 하는 욕망과 끈기, 그리고 기본적인 학습 능력을 갖춘 사람에게 한해서만 그렇다. 학생 개개인이 가진 호기심을 이끌어주고 동기를 주는 일은 인공지능보다 사람이 더 잘할 수 있는 일이다. 지금처럼 학령인구가 빠르게 감소하는 시기야말로 교사 수를 줄이기보다는, 교사들이 개별 학생의 성장을 AI와 함께 더욱 효과적으로 도울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할 때다.

이미 우리 교육의 문제점들은 수도 없이 지적되었고, 시도해볼 만한 대안들도 충분히 제시되었다.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이제는 정말 급진적으로 변화를 꾀하지 않으면 안 되게끔 벼랑 끝에 놓인 것이나 마찬가지다. 과거 여러 차례 우리는 교육 개혁을 외치면서도 실제 실행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바로 이전 정부에서는 장기적인 교육 정책의 밑그림을 그리기 위해 만들어진 국가교육위원회가 진영으로 나뉘어 파행만을 거듭하고 아무 일도 이루지 못했다. 전문가들이 수능 폐지까지 주장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전전 정권에서의 교육부는 공정성 여론에 떠밀려 오히려 수능 중심의 정시 확대를 각 대학에 강요한 바 있다.

이제 막 걸음을 뗀 디지털 교과서의 도입도 안착시키려는 노력보다는 전정권의 사업이라는 등의 이야기가 먼저 들려온다.

지금이야말로 골든타임이다. 국회 다수당을 뒤에 둔 강한 정부가 탄생하였고 앞으로 5년이라는 시간이 있다. 휘몰아치듯이 개혁을 할 수 있는 적기이다. 게다가 새 정부는 인공지능이 가져올 잠재력을 극대화하고자 다방면의 정책적 드라이브를 공표하였다.

과감히 수능 폐지를 검토하면 어떤가. 5년 혹은 10년 후 수능 폐지를 정해두고 여기에 맞추어 점진적으로 대학도 준비하고 중등교육도 바꾸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교육 현장에 뿌리박은 익숙한 제도와 방식을 바꿀 때 필연적으로 수반될 수밖에 없는 갈등과 혼란을 최소화하는 데만 초점을 두지 않기를 바란다. 리더십의 시험대는 비판받을 용기에 있다고 본다.

AI 자체가 우리가 가진 사회문제를 해결하지는 않는다. 새 정부의 ‘모두의 AI’ 슬로건은 AI와 함께 사는 세상에서 각 개인이 성장할 수 있는 자신만의 길을 찾는 여정에 AI가 지원군이 될 때 비로소 의미가 있을 것이다. 교육을 어떤 다른 정책적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취급할 수는 없다. 우리의 미래가 온전히 달려있기 때문이다.

김은미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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