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 들어 첫 대규모 방산 수출이 성사됐다. K2 ‘흑표’ 전차의 폴란드 2차 수출 계약이다. 정부는 이번 계약을 발판 삼아 K방산의 강점으로 꼽히는 가성비 및 빠른 납기일 달성에 ‘현지화’ 요소까지 더해 유럽 업체들의 견제를 돌파하겠다는 복안이다.
방위사업청에 따르면 브와디스와프 코시니악-카미슈 국방부 장관과 K2 전차 제작업체인 현대로템 간 2차 계약 협상이 2일(현지시간) 폴란드에서 이뤄졌다. 수출 계약 규모는 양측 협의로 공개하지 않았지만, 약 67억 달러(약 9조원) 규모로 추정된다. 추정대로라면 이는 개별 방산 수출 계약으로는 역대 최고다.
K2 2차 계약은 2022년 K2 180대, K9 212문, FA-50 48대, 천무 다연장로켓 등의 1차 계약에 이어 예정된 수순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지만, 협상은 3년 가까이 장기화됐다. 2023년 K9 자주포, 2024년 천무 2차 계약이 순차적으로 맺어지는 상황에도 K2 2차 계약 소식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협상 과정에서 폴란드형 K2 전차(K2PL) 개발과 현지 생산 등이 계약 내용에 포함되면서 사업 범위가 넓어지고, 규모도 커졌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1차 계약은 한국 내 생산 완제품으로 구성된 반면 2차 계약은 폴란드 군에서 요구하는 성능을 반영한 K2PL을 인도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또 2차 계약에선 180대 중 117대는 현대로템이 생산해 공급하고, 나머지 K2PL 63대는 폴란드 업체 PGZ가 현지에서 생산할 예정이다. 이는 폴란드 내 생산시설도 구축해야 한다는 뜻으로, 장기적 방산 협력의 토대가 마련되는 셈이다.
방사청은 “현지 생산 거점 구축은 총괄 계약에 포함된 K2 전차 총 1000대 물량에 대한 후속 계약의 이행 가능성을 높인 것”이라고 평가했다. 2022년 7월 폴란드와 맺은 K2 1000대, K9 자주포 672문, FA-50 48대, 천무 288문 등 4종 포괄계약의 실현 가능성을 거론한 것이다.
K2 계약 대수만 보면 1차와 같지만, 추정 금액이 약 9조원으로 1차 계약(약 4조5000억원)의 두 배에 이를 것으로 관측되는 건 이런 간접적 효과까지 감안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폴란드에 고위급 특별사절을 파견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방사청 관계자는 “구체적인 계약 규모는 추후 공개할 예정”이라면서 “계약 체결식은 양국의 정부 고위급 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방사청은 “이번 계약이 유럽연합(EU)에서 지난 3월 발표한 ‘유럽 재무장 계획’에 부합하는 방산 협력 모델”이라며 “유럽 내 개별 국가는 물론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차원에서도 새로운 방산 수출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실제 최근 나토가 트럼프 행정부의 요구에 응해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의 5% 수준까지 올리기로 약속하고, 자체적 방위력 강화에 집중하기로 한 것과 맞물려 K방산의 시장 진출 기회도 훨씬 커졌다는 분석이다.
실제 방산업계에선 이번 K2 2차 계약이 K방산의 유럽 현지화 전략을 본격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적지 않다. EU 집행위원회는 지난 3월 유럽 재무장 계획을 발표하면서 역내 방산기업을 우대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바이 유러피언’으로 불리는 재무장 정책은 2030년까지 5년간 8000억 유로(약 1200조원)를 투입해 EU 회원국의 무기 보유를 늘리는 게 골자다.
이 과정에서 EU는 1500억 유로 규모의 예산 여유분을 각국에 저리 대출로 지원하는데, 이를 위해선 총 무기 생산 비용의 65%에 달하는 부품을 EU 역내에서 만들어야 한다. 이는 K방산을 비롯한 역외 방산 경쟁국에 대한 견제책으로도 볼 수 있어 현지화는 필수 과제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