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오후 전남 무안군 현경면 전남서남부채소농협의 저온저장고. 냉기 가득한 165㎡ 규모의 저장고 안에 양파가 가득 쌓여 있었다. 이날 전남서남부채소농협 내 50여개의 저장고에는 양파 1만6000t이 성인 남성 키의 배를 훌쩍 넘는 높이로 쌓여있었다.
저온저장고가 가득 찬 탓에 이날 새로 들어온 양파는 저장고 옆 2645㎡ 크기의 비닐하우스 안에 쌓아둬야 했다. 농협 관계자는 “저장고에 들어가지 못하고 야적된 양파가 오늘 하루에만 440t에 달한다”며 “무안은 양파 수확이 끝났지만, 수확이 한창인 전북 등에서 추가로 매입될 양파의 야적량은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 최대 양파 산지인 무안을 비롯한 전국 양파 농가가 수확량 증가와 소비감소에 따른 가격 폭락으로 발을 구르고 있다. 무안은 전국 양파 재배면적 1만7682㏊ 중 12.8%(2273㏊)를 차지한다.
무안 지역 농가들은 양파값이 지난해의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지자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다. 농민들은 “올해 양파가 작황이 좋아 생산량이 급증한 데다 경기침체로 소비는 줄었는데 여기에 정부의 양파 수입 등이 맞물리면서 양파값이 곤두박질쳤다”고 말했다.
무안군 등에 따르면 올해 전국 양파 생산량은 136만t으로 지난해(118만t)보다 15.2%(18만t) 증가한 것으로 추산됐다. 이중 무안에서만 14만t이 생산돼 지난해(9만6000t)보다 45.8%(4만4000t)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생산량이 급증하자 양파 가격은 예년보다 크게 떨어지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지난 1일 가락동 농산물도매시장의 양파 도매가격은 ‘상품’ 1㎏당 780원에 거래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1063원)보다 26.6%(283원) 떨어진 것으로 지난 3~4월(1800~2300원)에 비해선 60%가량 떨어졌다.
경기침체에 따른 소비부진도 양파값 하락에 한몫을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올해 1~3월 국내 대형마트의 양파 판매량은 8362t으로 지난해(1만1358t)보다 26.3%(2996t) 줄었다.
무안군 해제면에서 양파를 재배하는 김선주(75)씨는 “치솟는 인건비와 비룟값 등을 감안하면 만생종 양파 20㎏을 생산하는 데 1만9000원 정도의 비용이 든다”며 “올해는 무안 지역 농가 대부분이 20㎏당 1만2000원 정도에 팔았으니 농사를 지어도 적자만 쌓여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농민들은 정부가 지난 2~3월 조생양파 출하시기에 양파 2만885t을 수입한 것도 가격 하락을 부추겼다고 지적했다. 전국양파생산자협회 무안군지회 홍백용 회장은 “양파 수입 전 농가들이 ‘조생종 양파가 나오기까지 열흘 정도만 기다리면 시세가 안정될 것’이라며 수입 중단을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수입산 양파가 들어오고 경기침체까지 더해지면서 양파 농가의 피해가 막심하다”고 말했다.
유통업계의 이른바 ‘산지 가격 후려치기’도 농가의 어려움을 가중시켰다는 말도 나온다. 양파값이 떨어지자 일부 양파 유통업체나 상인들이 포전거래(밭떼기) 가격 등을 낮추기 위해 재협상을 요구하거나 값을 낮춰 매입했기 때문이다.
농민 김정호(55·무안군)씨는 “유통업체들은 싸게 매입한 양파를 저장했다가 나중에 가격이 오르면 내보낼 수 있으니 이래저래 농가만 피해를 보는 셈”이라며 “정부가 양파 수입을 중단하고 ‘농산물 주산지 보호 특별법’ 제정을 통해 1kg당 양파 생산비를 보장하지 않으면 내년에는 농사를 포기해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