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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누가 처음 새끼돼지구이(烤乳猪)를 먹었을까?

중앙일보

2025.07.02 17:40 2025.07.02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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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에 와서 오리구이를 먹지 않으면 평생의 한이 된다는 속설이 있을 정도로 북경 사람들이 자부심을 갖는 별미가 북경오리구이(北京烤鴨)다. 맛도 좋지만 청나라 궁중요리에서 비롯됐으니 품격이 남다르다는 것이다.

북경오리구이에 뒤질세라 홍콩과 광동에서 내세우는 요리가 새끼돼지 통구이, 중국어로 카오루주(烤乳猪)다. 우리말로는 흔히 애저구이로 알려져 있다.

북경오리구이와 새끼돼지 통구이의 공통점은 통구이 바비큐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 맛의 핵심은 껍질에 있다는 것이 자칭 미식가들의 주장이다.

자체에서 나오는 기름을 발라 황금색으로 잘 구운 껍질에서 느껴지는 맛과 식감이 최고라는 것인데 심지어 청나라 황제들은 북경오리구이 먹을 때 껍질만 먹고 살코기는 아랫사람들에게 내주었다고 한다.

광동의 새끼돼지 통구이는 궁중요리가 아니었으니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어도 껍질에 등급을 정해 그 맛을 품평했다. 그중 최상의 맛은 소(酥)다. 호박색으로 잘 구워져 연유 맛이 나면서 부드럽과 아삭한 식감의 맛이다. 그 다음은 취(脆)다. 연하고 부드러우며 바삭한(crunchy) 맛이다. 최하가 경(硬)으로 잘 익어 딱딱하게 씹히는 맛이니 보통의 돼지껍질 구이 맛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껍질 맛에 얼마나 방점을 찍었는지 원래 이름 대신 취피루주(脆皮乳豬)라고도 부른다. 바삭한 껍질의 새끼돼지 통구이라는 뜻이다.

새끼돼지 통구이, 카오루주는 어쨌거나 이래저래 독특한 요리다. 일단 재료부터 특별한 것이 굳이 새끼돼지를 잡아 요리한다. 그래서 이름부터 우유 유(乳)자를 써서 루주(乳豬), 젖먹이 돼지다. 우리말 애저구이의 애저(애豬)는 아기돼지라는 의미이다.

보통 젖을 뗀 직후인 2~3개월 된 새끼 돼지, 내지는 반년이 안 된 어린 돼지로 요리한다. 그러니 새끼돼지 통구이를 먹으며 입맛을 다시는게 미안해지는데 그럼에도 솔직히 맛은 있다.

새끼돼지 통구이가 특별한 또 다른 이유는 잔치음식이기 때문이다. 광동지방에서는 혼인잔치에 빠지지 않는 요리라고 한다. 예전에는 신랑신부가 결혼 후 3일이 지나 신부집을 방문했다 돌아와야 비로소 혼인이 성립됐다. 이를 회문(回門)이라고 하고 이때 여는 잔치를 회문연(回門宴)이라고 하는데 이때 신랑집에서 준비하는 잔치음식이 새끼돼지 통구이였다. 혼인의 순결을 확인하고 자손많이 낳아 다복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지금도 잔치 음식으로는 물론 각종 제사를 지낼 때나 혹은 새로 사업을 시작할 때 새끼돼지 통구이를 준비하는데 조상님께 자손의 안녕과 사업의 번창을 기원한다. 새끼돼지 한 마리에 담은 염원이 간절하다.

그러면 중국에서는 누가, 언제부터 통돼지구이, 특히 새끼돼지 통구이를 먹기 시작했을까? 통돼지 구이는 중국뿐만 아니라 고대 로마에서도, 또 스페인과 독일, 필리핀과 베트남, 남태평양 등 세계 여러 곳에서 먹는 요리다. 중국 역시 역사가 깊어 3,000년 전 주나라 때 궁중 연회상에 올려졌던 팔진미 중의 하나였다고 한다.

팔진미까지는 몰라도 실제 춘추시대 주나라의 예법을 적은 유교 경전인 『예기』 「내칙(內則)」에 통돼지 구이가 보인다.

포돈(炮豚)이라는 요리인데 돼지의 배를 갈라 그 속에 갖가지 재료를 채워 넣고 굽는다고 나온다. 포(炮)라는 한자는 통째로 굽는다는 뜻이니 다시 말해 통돼지 바비큐다. 단 이때 사용한 돼지가 어미인지 새끼였는지는 구분되지 않는다.

그러다 미식의 극치를 추구하며 연하고 부드러운 젖먹이 새끼돼지를 골라 통째로 구워 요리한 시기는 대략 3세기 후반 5세기 전반 무렵으로 짐작된다. 5세기 초 남북조 시대 유의경이 쓴 『세설신어』에 관련 내용이 보인다.

3세기 말 진나라 무제 사마염이 사위의 초대를 받아 그의 집을 방문했을 때 음식상에 새끼돼지 찜(蒸㹠肥) 요리가 나왔다. 맛이 특별히 산뜻하고 좋았기에 어떻게 요리했냐고 물었다. 사위가 이 새끼돼지는 사람의 젖을 먹여 키운 것이라고 했다. 무제가 이 말을 듣고는 불편해하며 먹는 것을 중단하고는 자리를 떴다.

세설신어에는 이때 잡은 돼지를 돈(㹠)이라는 한자로 표현했는데 청나라 때 한자 자전인 『강희자전』에서는 돼지 새끼(豕子也)라고 풀이했다.

새끼돼지 통구이는 돼지와 불가분의 관계인 만주족이 지배했던 청나라 때 만주 황족과 귀족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했다. 청나라 때 미식가인 원매가 쓴 『수원식단』에 새끼돼지 굽는 법(燒小豬)이라는 요리법이 실려있다. 새끼돼지 통구이는 이 무렵 중국 남북에 널리 퍼지면서 지금의 광동을 대표하는 요리가 됐다는 것인데 중국 음식사학자 중 일부는 택도 없는 소리라고 반박한다.

홍콩과 광동의 새끼돼지 통구이 카오루주는 옛 남월(南越)지방의 전통 요리법을 계승한 것이니 중국 북부와는 별도로 동남아 내지 남태평양과 연결되는 중국 남부 전통 요리라는 것이다. 이렇듯 중국에서도 남북이 갈라져 왈가왈부 원조 논쟁을 벌이는 것이 새끼돼지 통구이다. 맛있지만 애처로운 애저 통구이 카오루주 속에는 이래저래 범상치 않은 역사와 문화 풍속이 넘친다.

윤덕노([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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