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백종인 객원기자] 퇴장 선언이 나왔다. 감독이 심판 판정에 대들다가 벌어진 일이다.
아름답지 못한 장면이다. 하지만, 뭐 그리 대단하겠나. 시즌 중에 수두룩하게 벌어지는 상황이다. 그야말로 별 일 아니다.
그러나 다 같지는 않다. ‘그게 누구냐.’ 거기에 따라 얘기가 많이 달라진다.
어제(2일) 일이다. 고시엔 구장에서 숙적 간의 대결이 펼쳐졌다. 한신 타이거스와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일전이다.
0-0으로 팽팽하던 8회 말이다. 홈팀 한신이 2사 후 1, 2루의 기회를 잡았다. 여기서 내야 땅볼이 나왔다. 그런데 유격수가 이를 놓친다. 기록상은 내야 안타다.
공이 흐르는 사이 2루 주자가 3루를 돌았다. 내친김에 홈까지 노린다. 타이밍은 접전이다. 최초 판정은 아웃이다.
그런데 한신 벤치가 이의를 제기한다. 비디오 판독을 요구한 것이다. 면밀한 검토 작업 끝에 결정이 뒤집힌다. 아웃이 세이프로 바뀐 것이다. 스코어가 1-0이 됐다. 이날 승부는 여기서 갈렸다.
그러자 원정 팀 감독이 달려 나온다. 2분에 걸쳐 맹렬하게 항의한다. 그렇다고 바뀔 일은 없다. 본인만 손해다. 퇴장 처분이 내려진 탓이다.
여기까지는 흔하디 흔한 장면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역사를 뒤져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수십 개의 매체가 이런 제목으로 기사를 출고한다.
‘거인 감독 아베 퇴장, 51년 만의 사건’.
요미우리 자이언츠 SNS
거슬러 올라가면 까마득하다. 반세기를 되짚어야 한다. 일본의 연호가 두 번이나 바뀌는 시간이다(레이와←헤이세이←쇼와).
1974년 7월 9일의 일이다. 다이요(현재 DeNA)와 경기다. 공이 타자의 팔꿈치에 맞았다. 그런데 구심은 파울을 선언한다. 화가 난 상대 팀 감독이 뛰쳐나왔다. 한참의 설전 끝에 심판의 퇴장 명령이 떨어진다.
당시 감독이 가와카미 테츠하루다.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9대 사령탑이다.
그리고 긴 세월이 지났다. 정규시즌만 7000번의 경기를 치를 시간이다. 그 사이 감독이 10번은 바뀐다. 하지만 퇴장을 당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제 아베 신노스케(44)가 51년 만의 사건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1956년 미즈하라 시게루를 포함하면 역대 세 번째로 퇴장당한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감독이다.)
이 정도면 꽤 당황스럽다. 일본 야구계 전체가 술렁인다. 누구보다 본인이 ‘아차’ 싶을 것 같다. 당혹감에 즉시 사과의 메시지를 낸다. 무척 이례적인 일이다.
“승부에 몰입하는 바람에 순간적으로 너무 흥분했다. 그러면서 자제력을 잃었다. 있어서는 안 될 일을 벌이고 말았다. 끝까지 팀을 지휘하지 못한 것은 잘못된 일이다. 엄파이어(구심)에게도, 선수들에게도 미안하게 생각한다.”
심판진도 마찬가지다.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굳이 해명하는 코멘트를 낸다.
“그 상황은 어쩔 수 없다. 리퀘스트(비디오 판독) 결과에 반발해서 항의하면, 감독에게 퇴장 처분을 내려야 한다. 그건 분명히 약속된 내용이다. 당시에 아베 감독도 이를 알고 있었다는 점을 확인했다.”
니혼 TV SNS 캡처
사실 퇴장이 그렇게까지 대단한 일은 아니다. 그런데 이 경우는 조금 다르다.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감독이라는 위치 때문이다.
아시다시피 특별한 팀이다. 요미우리는 일본 프로야구의 시작이자, 전부나 다름없다. 때문에 그 감독에 대한 신망도 남다를 수밖에 없다.
1950년 양대 리그가 시행되며, 본격적인 NPB 리그가 자리 잡았다. 이후 75년 간 재임한 사령탑이 10명뿐이다. 중간에 해임된 사람은 없다. 모두가 임기를 채웠다.
하라 다쓰노리는 임명과 퇴임을 3번 반복하며 17년 간이나 장수했다. 작고한 나가시마 시게오 같은 2기에 걸쳐 15년 동안 재임했다.
한결같이 신사적인 이미지의 인물들이다. “프로야구는 어린이에게 꿈과 희망을 줘야 한다”는 소신을 평생에 걸쳐 강조한다. 때문에 거친 언쟁이나, 분노를 드러내는 모습은 상상하기 어렵다.
물론 일본이라고 점잖은 감독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팀에는 피가 뜨거운 사람도 여럿이다.
최다 경력 보유자는 외국인 사령탑이다. 마티 브라운 감독은 5년간 히로시마와 라쿠텐에서 감독을 역임했다. 그동안 12번이나 퇴장 처분을 받았다.
그다음은 가네다 마사이치다. 롯데 사령탑을 맡으며 6번의 퇴장 경력을 지녔다. 동률 2위가 있다. 오치아이 히로미쓰다. 주니치 감독 시절 역시 6번이나 심판에게 쫓겨났다.
열혈남아 호시노 센이치도 질 수 없다. 주니치(4회), 한신(1회), 라쿠텐(1회)을 거치면서 합계 6차례의 퇴장 경력을 지녔다.
OSEN DB
반면 ‘퇴장의 달인’도 있다. 김응용 전 감독이다. 그는 해태, 삼성, 한화를 거치며 18번이나 ‘레드카드’를 받았다.
하지만 누구도 명함을 내기도 어려운 존재가 있다. 가히 이 분야의 레전드 급이다. 메이저리그 최고의 명장으로 꼽히는 바비 콕스다. 그는 25년간 161번이나 퇴장당했다. 압도적인 최다 기록이다.
그의 방식은 특이하다. 선수가 쫓겨나기 전에 자신이 미리 달려 나가 몸을 던진다. 그리고 한껏 오버하면서 심판을 몰아붙인다. 결국 자신의 퇴장으로 선수를 보호한다. 통산 2504승(역대 3위)은 그런 헌신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