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돈 침대 사태’의 피해자들이 침대 제조사를 상대로 낸 집단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최종 승소했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3일 오전 10시 소비자 600여명이 대진침대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 상고심에서 “대진침대가 소비자에게 매트리스 가격 상당의 손해 및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본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며 이같이 선고했다. 소비자들은 1인당 56만~290만원씩 매트리스 구매가격만큼 배상받는다.
재판부는 “침대 매트리스는 통상 밀폐된 공간에서 장시간 신체에 밀착하여 상당한 기간지속적으로 사용되는 제품으로, 제품의 특성을 고려할 때 매트리스에서 방출되는 방사성 물질이 사용자의 신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며 “방사선 피폭으로 인한 위험을 제거하기 위한 조치 등을 취했어야 함에도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했다.
아울러 매트리스 제조 당시 이를 제한할 ‘생활주변방사선 안전관리법’이 존재하지 않아 위법하지 않다는 점에 대해서도 대법원은 “방사선에 대한 당시의 일반적인 인식 등을 고려하면 위 법규에서 정한 일반인의 피폭방사선량 한도나 가공제품의 안전기준을 이 사건에서 고려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또 실제 질병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부분에도 대법원은 “반드시 질병이 발생하는 경우에만 위자료를 인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며 “잠복기로 인하여 질병이 현실적으로 발생한 시점에 증거가 사라져 없어지거나 다른 위험인자가 작용·개입되는 등의 경우에는 피해자가 인과관계 등 불법행위책임의 성립요건을 증명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고 봤다.
라돈 침대 사태는 2018년 5월 초 대진침대에서 폐암의 주원인이자 1급 발암물질인 라돈이 기준치 이상 검출됐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시작됐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대진침대 제품의 방사선 피폭선량이 기준치의 최대 9.3배를 넘어섰다며 매트리스 7종 모델의 수거 명령 등을 내렸다.
이에 소비자들은 2006년부터 2015년까지 대진침대가 제조한 음이온 침대 매트리스를 사용해 폐암 등이 발병하고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겪었다며 대진침대, 대진침대 대표이사,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1·2심 결과는 엇갈렸다. 2023년 10월 1심은 “대진침대의 매트리스가 제조·판매 당시 기술 수준에 비춰 기대 가능한 범위 내의 안전성을 갖추지 못했다거나 당시 법령에 저촉되는 위법 행위를 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하고 소송 비용은 모두 원고가 부담한다”고 판결했다.
이어 “라돈과 같은 방사성 물질은 지구상 어디에나 존재해 일상생활 중 쉽게 노출될 수 있다”며 “대진침대 매트리스로 인한 최대 연간 피폭선량은 13mSv(밀리시버트)로, 수년 정도의 비교적 짧은 기간 노출돼 폐암 등의 발병 가능성이 유의미하게 증가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2심 재판부는 1심을 뒤집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2심은 “실정법상 라돈 방출물질의 사용을 금지하는 명문의 규정이 없다 하여 당연히 사용이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고 지적하며 “대진침대는 사람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침대 매트리스를 제조함에 있어 인체에 유해하지 않은 물질을 사용할 의무가 있었음에도, 안전성을 결여한 매트리스를 제조·판매한 것은 위법하다”고 밝혔다.
2심은 구매가격이 인정된 원고들에겐 대당 56만원에서 290만원에 이르는 대진침대 매트리스 구매가격을, 구매가격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가 제출되지 않은 원고들에겐 매트리스 출고가격을 손해배상액으로 인정했다. 다만 1심과 마찬가지로 구매자가 아닌 가족의 위자료 청구는 인정하지 않았고 정부 책임 역시 없다고 봤다.
대법원 관계자는 “피해자에게 현실적으로 질병이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사회통념에 비추어 정신상 고통을 입은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면 위자료를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독성물질에 노출된 피해자에 대한 사법적 구제의 실효성을 도모했다”며 “위자료 인정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에 관한 법리를 최초로 설시했다”는 의의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