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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국무장관 방한 취소…조기 한·미 정상회담 차질 빚나

중앙일보

2025.07.02 19:53 2025.07.02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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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8일쯤 한국을 찾을 예정이었던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이 방한을 취소하면서 이를 한·미 정상회담 의제와 일정을 조율하는 기회로 삼으려던 정부의 계획에도 차질이 생겼다. 이재명 대통령이 아직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상견례도 하지 못한 가운데 루비오 장관의 방한 무산이 조기 한·미 정상회담 성사 여부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제기된다.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 로이터=연합뉴스

대통령실 관계자는 3일 “한·미는 루비오 장관의 방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협의해왔으나 미 내부 사정상 조만간 방한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미는 고위급 인사 교류에 대해 지속적으로 협의해 나갈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당초 루비오 장관은 방한이 성사될 경우 카운터파트인 위성락 국가안보실장과 만나고 이 대통령을 예방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었다.

미국 측이 방한 취소 결정을 알린 건 2일(현지시간)이라고 한다. 오는 7일 예정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방미에 따른 미·이스라엘 정상회담에 루비오 장관이 배석해야 한다는 점 등을 이유로 설명하며 양해를 구했다고 한다.

루비오 장관은 방한과 연이어 추진하던 일본 방문도 함께 취소했다. 그가 국무장관뿐 아니라 국가안보보좌관도 겸하고 있는 데다 아시아 순방보다 중동 정세나 관세 협상 등 다른 외교 현안을 우선으로 둔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각료급 인사의 방한이 사실상 확정된 상황에서 1주일도 남기지 않고 취소되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또 네타냐후 총리가 방미해 트럼프와 만난다는 사실은 이미 이틀 전인 지난달 30일 공개됐다. 일정은 그 전에 확정됐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도 방한이 임박해서야 취소를 통보한 것이다.

루비오 장관은 한·일 방문을 건너뛰고 미국에서 곧바로 말레이시아로 이동, 오는 10일 열리는 동남아국가연합(ASEAN, 아세안) 관련 외교장관회의에 참석할 예정이다. 일본은 루비오 장관이 단독 방일을 하지 않더라도 이를 기회로 미·일 외교장관회담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직 조현 외교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일정도 확정되지 않아 한국에서는 박윤주 외교부 1차관이 아세안 관련 외교장관회의에 대신 참석한다고 외교부가 이날 밝혔다. 현지에서도 루비오 장관을 비롯한 미·일·중·러 등 주요국 외교 수장과 양자 회담이 이뤄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뜻이다. 루비오 장관이 한국을 찾지 않기로 한 건 이런 한국의 특수한 상황을 우선적으로 배려하지는 않았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개최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 이재명 대통령을 대신해 참석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지난달 25일(현지시간) 마르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 겸 국가안보보좌관과 면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실

루비오 장관의 방한이 막판에 무산된 배경을 두고 한·미 정상회담을 위한 사전 의제 협의에서 양 측이 쉽게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한·미는 당초 관세 등 통상 분야와 국방비 등 안보 분야에서 투트랙 실무 협의를 진전시킨 뒤 이 대통령의 방미 등을 통해 정상회담에서 합의하는 구상을 그리는 것으로 관측됐다.

그러나 이재명 정부의 외교안보 진용이 아직 완전히 갖춰지지 않았고, 트럼프 행정부가 가장 관심을 두는 관세와 안보비용 문제에서 당장은 뚜렷한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자 루비오 장관이 방한을 차순위로 미룬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와 관련, 이 대통령은 이날 취임 30일 기자회견에서 관세협상에 대해 "아직까지도 쌍방이 정확하게 뭘 원하는지 명확하게 정리되지는 못한 상태"라며 "('줄라이 패키지' 시한인)7월 8일까지 끝낼 수 있을지도 확언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처럼 협상이 난항을 겪는 가운데 루비오 장관의 방한을 협상 시한 연장을 끌어내기 위한 계기로 활용할 수도 있었지만, 이마저 무산됐다는 아쉬움도 제기된다.

앞서 지난달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를 계기로 추진되던 한·미 정상회담은 각각 트럼프의 조기 귀국과 이 대통령의 불참 결정으로 무산됐다. 여기에 루비오 장관의 방한도 갑작스럽게 취소되면서 한·미 정상회담 준비 자체에 차질이 빚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첫 정상회담이 오는 9월 유엔 총회나 10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까지 미뤄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여기에 최근 중국이 외교채널 등으로 오는 9월 전승절(항일전쟁 및 반파시스트전쟁 승리 80주년 대회)에 이 대통령을 초청하면서 한·미 및 한·중 정상회담 순서 조율을 비롯한 관련 협의가 이재명 정부 출범 초기 복잡한 외교 고차방정식이 됐다. 이 대통령이 트럼프를 대면하기 전 중국 전승절 행사 참석 여부를 결정해야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은 취임 71일만에, 문재인 전 대통령은 취임 51일만에 방미를 통해 첫 한·미 정상회담이 성사됐다. 윤석열 전 대통령 때는 취임 11일만에 조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이 방한하면서 첫 회담이 열렸다.



박현주([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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