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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tlook] 여름보다 눈부셨던 청춘…돌아온 교토국제고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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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03 08:01 2025.07.03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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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일본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결승전에서 간토다이이치고를 2-1로 꺾고 우승한 직후 환호하는 교토국제고 선수들. [교도=연합뉴스]
‘여름의 전설’의 시간이 돌아왔다. 지난해 여름 일본 최고 권위의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일명 고시엔(甲子園)을 제패하며 센세이션을 일으킨 교토국제고 야구부가 대회 2연패를 위한 첫발을 내디딘다.

교토국제고는 지난 1947년 재일한국인들이 설립했다. 야구부가 생긴 26년 전엔 ‘교토한국학원’이라는 이름의 외국인 학교였는데, 현재는 일본 정부가 정식 인가한 일반 고교다. 재일동포뿐 아니라 일본 국적 학생도 다닌다. 그런데도 ‘동해 바다 건너서 야마토 땅은 거룩한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로 시작하는 한국어 교가는 변함없이 유지하고 있다.

교토국제고가 또 한 번 고시엔 무대를 밟으려면 5일에 개막하는 교토 지역 대회부터 통과해야 한다. 총 73개 학교가 출전하는 이 대회에 걸린 고시엔 출전 티켓은 단 한장. 고시엔 2연패의 서막을 열 첫 경기는 6일에 열리는 니시마이즈루(西舞鶴)고와의 경기다.

지난해 여름 고시엔 우승기를 받아드는 교토국제고 선수단. 교도=연합뉴스
기적처럼 전국 제패의 꿈을 이룬 교토국제고는 선수단 재정비가 늦어져 이후 어려움을 겪었다. 통상적으로 여름 대회를 마치면 3학년은 대회에 출전하지 않고(이를 ‘은퇴’라 표현한다) 1·2학년 위주로 팀을 개편한다. 그런데 교토국제고는 고시엔에 참가하느라 다른 팀보다 이 과정이 한 달 이상 늦어졌다. 그 결과 가을 교토 지역 대회에서 4회전(16강) 탈락이라는 부진한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지난해 고시엔 결승에서 교토국제고와 맞붙은 간토다이이치(関東第一)고도 같은 이유로 가을 도쿄도 대회 3회전(16강)에서 탈락했다.

지난해 2학년으로 고시엔 제패를 이끈 왼손 에이스 니시무라 잇키(西村一毅)의 부진도 교토국제고가 주춤한 원인이다. 주 무기인 슬라이더 각이 밋밋해져 한동안 어려움을 겪었다. 최근 슬럼프에서 탈출해 기대를 모은다. 지난 4월 18세 이하(U18) 일본야구대표팀 상비군에 뽑힌 뒤 슬라이더를 집중 연마했다는 후문이다. 3루수 시미즈 우타(清水詩太)도 니시무라와 함께 일본 프로야구(NPB)팀들이 주목하는 기대주다.

교토국제고가 일본에서 ‘야구 명문’으로 자리매김한 건 이 학교 출신 신성현이 지난 2008년 히로시마 도요카프에 신인 드래프트 4순위 지명을 받으면서다. 이후 프로 진출을 꿈꾸는 일본 국적 유망주들이 교토국제고 문을 두드렸고, 12명의 프로 선수를 배출했다.

교토국제고는 지난해 여름 고시엔 정상에 오르며 뜨거운 주목을 받았다. 교도=연합뉴스
4년 전 여름 고시엔 4강에 이어 지난해 우승까지 달성해 성적에 대한 안팎의 기대감이 그 어느 때보다 크지만, 경기 결과보다는 선수의 성장을 우선하는 고마키 노리츠구(小牧憲継) 교토국제고 감독의 지도 철학은 올해도 변함없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도 ‘지역 대회 우승’이나 ‘고시엔 진출’ 같은 팀 성적 대신, 심층 면담을 통해 선수 각자에게 맞는 맞춤형 목표를 제시했다. ‘각자 주어진 목표를 달성하면 팀 성적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는 게 고마키 감독 생각이다.

교토 지역 대회에서 교토국제고가 순항한다면 오는 27일에 열리는 결승전에 나설 수 있다. 지역 우승을 다툴 경쟁자로는 봄에 열린 지역대회를 제패한 교토교에이(京都共栄)고가 첫손에 꼽힌다. 봄 대회 당시 8강전에서 노히트노런을 기록한 ‘괴물 투수’ 고바야시 가이토(小林海翔)의 기세가 매서운데, 대진표상 8강에서 만날 가능성이 높다.

결승에서 만날 수 있는 전통의 명문 류고쿠다이헤이안(龍谷大平安)고도 요주의 대상이다. 여름 고시엔 무대에 34차례 출전해 세 번이나 우승한 야구 명문이다. 봄 고시엔 대회에도 42차례 출전해 한 번 우승했다.

여름 고시엔 우승 확정 직후 환호하는 교토국제고 학생들. 교도=연합뉴스
교토 지역 대회엔 여름 고시엔 출전권이 걸려 있지만, 이를 고시엔 ‘예선’쯤으로 생각해선 곤란하다. 교토를 포함해 이맘때 전국 각지에서 일제히 열리는 고교야구대회는 해당 지역의 신나는 야구 축제다. 대부분의 지역 방송사가 경기를 생중계한다. 지방 대회 전 경기를 버추얼 고교야구(vk.sportsbull.jp/koshien)에서 라이브 중계한다.

장내 방송과 그라운드 정비 등 경기 운영의 상당 부분은 고교생들이 직접 맡는다. 선수뿐만 아니라 밴드부, 치어리더, 진행요원에 이르기까지 대회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에게 여름 고교야구는 청춘의 뜨겁고 아름다운 추억이다. 한국 스포츠 팬들도 교토국제고의 도전을 통해 하이큐(배구), 슬램덩크(농구) 등 스포츠 만화 속 동아리 중심의 일본 학원 스포츠 문화를 만끽하길 바란다.

◆오시마 히로시(大島裕史)=1961년 도쿄 출생. 메이지대 졸업 후 연세대 한국어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웠다. 지한파 스포츠 저널리스트로 활동 중이다. 1998년 ‘일한 킥오프 전설’로 일본 최고 권위의 미즈노 스포츠 라이터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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