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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슬의 숫자 읽기] 토건 보수와 개미 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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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03 08:04 2025.07.03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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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슬 약사·작가
이재명 정부의 첫 부동산 정책 반응이 뜨겁다. 수도권 주택 구매 시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일괄 6억원으로 제한하는 정책이 전면 시행돼서다. 일각에선 고소득 흙수저의 부동산 매입 기회 박탈을 주장한다. 그렇지만 6억원을 통상적인 조건으로 주택담보대출 받을 시, 한 달에 납부해야 하는 금액은 약 286만원이다. 2025년 1분기 기준 평균적인 가구의 가처분소득이 422만원 정도니, 저만큼의 금액을 상환할 경우 한 달 136만원만으로 생계를 꾸려야 한다. 평균 가계 소비지출이 295만원임을 감안하면, 이 같은 구조가 30년이나 지속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 애초에 중산층이랑은 별로 관련 없는 정책이란 얘기다.

그렇다면 이런 정책은 왜 나온 걸까. 지난 민주당 정부의 부동산 실책을 복기(復棋)해, 임기 초부터 강경하게 대응했단 주장은 아마 절반 정도만 맞을 테다. 더 근본적인 원인은 민주당 지지층의 핵심 세력이 변화했단 점이다. 부동산과 같은 실물자산보단 주식이나 코인과 같은 금융자산으로 자산을 축적한 ‘개미 진보’가 등장해서다. 2025년 3월 발표된 예탁결제원의 상장법인 주식 소유자 현황 자료를 살펴보자. 국내 상장주식 개인 소지자는 1410만 명인데, 그중 44.5%가 민주당의 핵심 지지층인 40·50 세대다. 이재명 정부가 임기 초부터 코스피 5000시대를 외친 이유다. 반면, 주택시장은 상황이 좀 다르다.

김주원 기자
부동산을 본격적 투자 수단으로 삼으려면, 적어도 2주택 이상을 보유해야 한다. 여러 변칙적 상황은 있어도, 실거주할 주택 1채는 필요해서다. 2023년 주택소유통계에 따르면, 세대 내 다주택자 비율이 15%를 넘는 유이(唯二)한 세대가 50대와 60대다. 이들이 바로 재건축·재개발 등으로 자산을 늘려온 ‘토건 보수’의 실체다. 서울의 신규 주택 공급이 여러 이유로 막힌 상태에서, 이들이 매물을 틀어쥐면 부동산 가격은 계속 오른다. 같은 50대라고 하더라도 금융 상품으로 자산을 쌓고, 소위 ‘상급지 부동산’으로 옮겨가길 바라는 이들 혹은 아직 집이 없는 40대 민주당 핵심 지지층의 이익과는 극도로 상충한다. 그러니 지난 정부와 같은 이념화된 부동산 정책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집값 상승을 꺾을 강한 규제책이 나온 것이다.

이번 부동산 정책은 한국 정치의 축이 바뀌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영·호남 갈등 같은 지역주의나 안보 이념을 중심으로 한 갈등 축이 아닌 개인의 ‘자산 포트폴리오’가 정치의 새 전선(戰線)이 됐다. 어설프게 엮은 성별·세대 갈등에 기대기보단, 어떤 자산을 보유한 유권자 집단의 효용을 극대화할 것인지에 대한 냉정한 계산과 집행이 주된 정치 쟁점이 된 거다. 좋든 싫든 이게 5년간 마주해야 할 이재명 대통령식의 실용주의 정치의 요체다. 보수 역시 그에 맞는 실용적 해법을 찾아내야만 한다.

박한슬 약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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