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다윈은 『종의 기원』을 극한의 미괄식으로 저술했다. ‘진화’라는 단어를 단 한 번, 마지막 문장의 맨 끝에 썼다. ‘결론을 앞세울 경우 독자 중 대다수는 반발부터 하겠지. 풍부한 사례와 치밀한 논리를 아예 읽지 않겠지.’ 다윈은 이렇게 생각했으리라.
오랜 연구가 응축된 끝 문장은 분량이 길고 구조가 복잡하다. 번역 난도는 최상급이다. 근래 국내에 번역된 책에도 부정확한 문장이 실렸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의 기량이 날로 향상됨을 확인하면서, 필자는 이 문장의 용도를 떠올렸다. AI 번역이 최고 수준에 올랐는지 평가하는 데 활용하기로 했다.
그동안 AI의 이 문장 번역은 인간 오역의 언저리를 맴돌았다. 최근 챗GPT가 마침내 이 관문을 통과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글쓰기에 강한 챗GPT 4.5 모델이 다음과 같이 제대로 옮겼다.
“생명이 (중략) 처음에는 몇몇 형태들 또는 하나의 형태에 불어 넣어졌고, (중략) 그렇게 단순한 시작으로부터 끝없이 많은 (중략) 형태들이 진화해왔고 지금도 진화하고 있다는 이 관점에는 장엄함이 있다.”
다른 AI는 원문과 의미가 다른 문장을 내놓았다. 챗GPT 4.5처럼 원문 중 ‘생명이 (중략) 불어 넣어졌고’를 ‘관점’을 구성하는 두 가지 내용 중 하나로 해석해야 한다. 이를 다른 AI는 ‘생명의 관점’ ‘생명관’ ‘삶에 대한 이러한 관점’ 등으로 오역했다. 클로드부터 딥L, 딥시크, 제미나이, 그록 등 해외 AI와 뤼튼 등 국내 AI 모두 예외가 없었다. 다만 AI 역량이 빠르게 상향 평준화되는 추세를 고려할 때 다른 AI들도 조만간 언어 영역에서 챗GPT 4.5 수준으로 올라설 것으로 예상된다.
끝없는 진화를 믿은 다윈. 자신이 심혈을 기울여 쓴 문장을 진화한 기계 지능이 정확히 번역하기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듣는다면, 크게 놀라면서도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짓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