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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천의 퍼스펙티브] ‘박정희 수출회의’처럼 대통령이 정례회의서 직접 챙겨야

중앙일보

2025.07.03 08:24 2025.07.03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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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개혁에 미친’ 진보정부를 기대하며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좋은 불평등』 저자
“가짜 성장을 극복하고, 진짜 성장의 시대를 열겠다.” 대선후보 시절에 이재명 대통령이 했던 말이다. 역대 대통령 대부분이 그랬지만, 이 대통령 역시 후보 시절에 경제성장을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경제성장의 동력으로 AI 산업과 재생에너지 산업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경제성장은 어떻게 작동하는 것일까? 경제성장의 중요 원리 중 하나는 ‘경제적 역동성’ 그 자체다. 마치 생로병사의 메커니즘처럼 새로운 산업, 새로운 기업, 새로운 상품이 많을수록 경제성장률은 높아진다. 이재명 정부는 ‘규제개혁에 미친’ 진보정부가 될 필요가 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경제성장을 위해서라도 규제개혁이 적극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둘째, 진보의 약점을 보완하는 차원에서도 규제개혁 어젠다는 상징성이 매우 크다. 규제개혁을 대통령의 핵심 어젠다로 추진할 경우 이재명 정부의 정치적 성공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문제 해결을 위해서라면 “박정희 정책도, 김대중 정책도, 필요하고 유용하면 구별 없이 쓰겠다”고 표방했다. 규제개혁이야말로 실용적 시장주의를 표방하는 진보정부에 딱 어울리는 아젠다다.

규제개혁, 일론 머스크 방식 아니라 ‘박정희 모델’ 벤치마킹을
① 대통령 직접 참석 ② 정례회의 ③ 사전 준비가 핵심 포인트
미국·중국식 사후적·네거티브 규제 대신 한국적 방법을 찾아야
규제개혁에 열정적이고 균형감각 있는 ‘어공’ 적극 활용했으면


미국·중국만 ‘사후적 규제’ 하는 이유
1967년 8월 제8차 수출진흥확대회의. [사진 국가기록원]
규제개혁 이슈가 나오면 흔히 사전적·포지티브 규제를 사후적·네거티브 규제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한국에서 4차 산업혁명 담론이 유행한 2015년 이후부터 꾸준히 나오는 이야기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지구상에서 실제로 사후적·네거티브 규제를 하는 나라는 미국과 중국 정도밖에 없다. 미국은 자본주의 첨단 국가이고, 중국은 권위주의 첨단 국가인데, 왜 이 두 나라인가.

두 나라의 공통점은 경제 규모의 거대함과 내부의 이질성이다. 미국은 시간대만 6개가 있는 나라다. 동일한 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크다. 중국 역시 연안 지역과 내륙 지역은 ‘다른 나라’라고 봐도 무리가 아닐 정도로 이질적이다.

중국과 미국은 사후적·네거티브 규제의 작동방식이 다르다. 중국은 공산당 일당 독재로 인해 가능했다. 중국은 ‘전체주의적 규제 프리 국가’에 가깝다. 대표적인 사례가 안면 인식 기술이다. 중국은 6억개 이상의 CCTV가 전국에 설치되어 있고, 2019년부터는 휴대전화 개통 시 얼굴 정보 등록을 의무화했다. 그 결과 14억 인구 중 한 사람을 식별하는 데 약 3초가 소요되고, 인식의 정확도는 99%를 넘어 쌍둥이도 구분할 수 있을 정도다. 중국의 안면 인식 기술이 세계 최고가 된 것은 조지 오웰이 소설 『1984』에서 우려했던 ‘빅 브라더’ 사회여서 가능했다.

미국에서 사후적·네거티브 규제가 작동하는 방식은 중국과 또 다르다. 미국은 강력한 민사적 규제수단을 갖고 있다. 징벌적 배상제, 집단소송제, 디스커버리(증거개시) 제도가 대표적이다. ‘사후에’ 작동하는 강력한 민사적 규제수단을 갖고 있기에 네거티브 규제가 가능했다. 미국은 사후적 규제를 하는데, 유럽은 사후적 규제를 하지 않는 이유다. 2015년 이후 한국의 보수언론과 경제지를 중심으로 사후적·네거티브 규제 필요성이 강조됐는데 이들이 ‘미국식’ 사후적 규제에 실제로 동의할지는 의문이다. 한국은 중국도 아니고, 미국도 아니다. ‘한국적’ 규제개혁 방법을 찾아야 한다.

박정희 수출회의엔 외무부까지 참석
1977년 수출진흥확대회의 모습. [사진 국가기록원]
규제개혁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많은 사람이 먼저 떠올리는 것은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 출범과 함께 시작했던 일론 머스크의 정부효율부(DOGE) 사례다. 결론부터 말하면, 정부효율부 사례는 한국에서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정부효율부가 실제로 했던 일은 연방계약 해지, 정부 기관 축소, 대규모 인력 해고였다. 일론 머스크는 처음에 2조 달러를 절약하겠다고 큰소리쳤으나 실제로 줄인 금액은 1900억 달러 수준에 불과했다. 목표 대비 10분의 1도 못했다. 대규모 해고의 경우, 미국 국제개발청(USAID)은 사실상 해체했고, 소비자금융 보호국(CFPB) 인력의 85%를 감축했다. 대부분 ‘경제적 약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기구들이었다. 정부효율부의 대량 해고는 2025년 3월 메릴랜드 연방법원에 의해 ‘헌법 위반’ 가능성이 높다는 판결을 받았다. 의회의 승인 없이 연방정부 부처를 해체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공무원 해고가 법적으로 금지된다는 점에서 미국의 정부효율부 사례는 있을 수 없다.

이재명 정부가 규제개혁을 위해 참고해야 할 모델은 오히려 박정희 대통령이 주도했던 수출진흥확대회의(이하 ‘수출회의’)다. 수출회의는 월간 경제동향 보고회의와 함께 박정희 정부의 수출 중심 경제발전 노선을 상징하는 양대 회의체였다. 수출회의는 1962년부터 1980년 박정희 대통령 서거 직후까지 총 151차례 개최됐다. 수출회의는 박정희 정부를 직접 경험했던 관료와 기자들을 통해 ‘전설처럼’ 회자됐다. 그러나 한국경제 발전사의 중요성에 비해 학문적인 연구는 매우 미진했다. 자료가 취약했기 때문이다. 2000년대 후반 이영훈 교수, 최상오 박사 등이 국가기록원에서 수출회의를 녹음한 녹음테이프를 발굴했다. 이후 18년치의 방대한 녹음테이프를 풀어 3권 2000쪽 분량의 ‘녹취록’으로 만들었다. 이후 학문적 연구가 급진전한다.

녹취록을 분석한 김두얼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수출회의의 절정기는 1965~77년 기간이다. 수출회의는 1962년부터 있었다. 그런데, 1965년부터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참석하고, 회의를 주재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151차례 회의 중 5번을 빼고 모두 참여했다. 회의는 상공부가 주최했고, 보통 2시간 진행됐다. 관료·업계·학계를 포함, 약 100명이 참여하는 매머드급 회의였다. 기능의 핵심은 ‘수출입 실적과 관련 정책의 보고 및 점검’이었다. 회의 시간 중 80%는 상공부와 외무부(!) 담당자가 수출 관련 실적을 보고하고 향후 수출 증진을 위한 정책과 진행 상황을 보고하는 것이었다. 놀랍게도 당시 외무부의 주요 업무 중 하나는 ‘수출 실적’을 체크하는 것이었다.

2시간 회의 중 박정희 대통령은 중간중간 질문을 했고, 발언은 5분 내외였다. 간혹 ‘쟁점 사안’이 있을 때 개입하는 발언을 했다. 대통령이 직접 참석하고 질문하는 경우도 있었기에, 관련 부처 공무원들은 수출회의에 대한 ‘사전 준비’를 치열하게 했다. 민간 기업 쪽 사람들을 미리 만나 현황을 파악하고, 수출 증진을 위해 필요한 조치가 무엇인지 조사했다. 관련 부처는 서로 협의하고 이견을 조율했다. 한국경제는 1964년 수출 1억 달러, 1971년 수출 10억 달러, 1977년 수출 100억 달러를 달성했다. 수출 100억 달러를 달성한 1977년 12월 22일, 박정희 대통령은 ‘100억불 수출 치사’를 발표한다. “서독이 수출 10억불에서 100억불에 이르는데 11년, 일본이 16년의 세월이 걸렸는데, 우리는 7년이 걸렸을 뿐입니다.” ‘수출입국(輸出立國)’, ‘수출만이 살길이다’. 박정희 정부 시대를 대표하는 표어들이다. 수출회의와 수출 100억불 달성은 박정희 대통령 본인이 ‘수출에 미친’ 사람이었음을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규제개혁 성공을 위한 네 가지 방법론
이재명 정부는 규제개혁을 추진함에 있어 박정희 정부의 수출회의를 모방할 필요가 있다. 박정희 정부의 수출회의가 성공한 비결을 추려보면 ①대통령의 직접 참석 ②정례적 회의 ③사전 준비의 중요성이다.

이재명 정부가 규제개혁에서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3가지 방법이 가능하다. 첫째, 새로운 부처로 ‘규제개혁부’를 신설하는 것이다. 정치적 상징성이 분명하고, 규제개혁부 장관으로 현역 의원의 합류가 가능하다. 둘째, 대통령 직속으로 ‘규제개혁위원회’를 만들고, 일 처리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규제개혁위원회 위원장(혹은 부위원장)으로 두는 것이다. 셋째, 기획예산처 기능이 떨어져 나간 상태의 재정경제부에 규제개혁 업무를 추가하는 것이다. 박정희 정부 시절에 경제기획원이 ‘경제동향’을 체크했던 것처럼, 재정경제부가 ‘규제개혁 동향’을 체크하는 방식이다.

이 중에서 첫째, 둘째 방식을 추천한다. 이재명 정부가 규제개혁을 성공하려면 ① 대통령의 직접 참석 ② 정례적 회의 ③ 사전준비의 중요성에 덧붙여 ④ 규제개혁에 열정적이고 균형감각을 가진 ‘어공’(어쩌다 공무원, 정무적 역할을 하는 채용직 공무원)의 투입과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민주당은 이미 ‘규제개혁에 미친’ 의원모임을 갖고 있다. 현재 이재명 대통령의 비서실장으로 있는 강훈식 의원이 21대 국회에서 회장을 맡았던 ‘유니콘 팜’이 대표적이다. 유니콘 팜은 민주당이 주도하되 국민의힘 의원도 함께하고 있는, 혁신형 스타트업을 위한 규제개혁을 돕는 국회의원 모임이다. 일선 기업 및 협회와 교류하며 ‘규제개혁을 돕기 위해’ 동분서주해 본 경험과 노하우를 가장 많이 가진 공무원 집단은 국회 보좌진들이다. 즉, 국회 보좌진 출신 ‘어공’이 일정 규모로 들어가서 활약할 수 있는 규제개혁부 또는 규제개혁위원회 체제여야 한다.

국민의 눈높이에서 볼 때, 어떤 정부가 성공한 정부로 기억될까? 업적이 분명하고, 그 과정에서 ‘진심이 느껴지는’ 정부다. 박정희 대통령의 수출에 대한 집념, 김대중 대통령의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고군분투, 노무현 대통령의 지역균형발전 노력이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이재명 정부가 ‘규제개혁에 미친’ 진보정부로 기억된다면, 이재명 정부의 정책적, 정치적 성공뿐만 아니라 한국경제 발전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좋은 불평등』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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