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여름, 내전 중이던 레바논 남부의 작은 도시에 어떤 소문이 돌았다. 이스라엘 공군의 한 조종사가 이 도시 외곽에 있는 건물을 폭격하라는 상부 명령을 거부했다는 이야기였다. 이유는 그 건물이 학교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 몇 분 후 다른 조종사가 임무를 수행하여 학교는 결국 파괴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는 일종의 도시 전설처럼 한동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35분짜리 ‘거부하는 조종사에게…’
바다 날던 종이비행기 무언가 투척
이스라엘 조종사 폭격 거부에 매료
역사의 빈틈 메우는 개인 서사 주목
폭격 목표 레바논 학교 교장의 아들
30년 후 조종사 극적 상봉 영화 제작
레바논의 대표적인 영화감독 중 한 명인 아크람 자타리는 당시 열여섯 살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폭격당한 학교의 교장이었다. 학교가 폐쇄되고 한 달 정도 후부터 명령을 거부한 조종사에 대한 소문이 돌았고 자타리는 이 이야기에 매혹되었다. 그는 형과 함께 아버지를 따라 파괴된 현장을 찾아가 사진으로 찍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온갖 일들을 기록하는 것이 당시 그의 유일한 취미였다.
소년 시절부터 카메라·녹음기로 전쟁 기록
레바논 내전은 자타리가 아홉 살인 1975년에 시작되어 15년간 이어졌다. 바깥은 늘 위험해 집안에 갇혀 있는 날이 더 많았다. 다행히 카메라와 녹음기가 있었다. 소년 자타리는 주변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사건들을 기록하며 시간을 보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팝 음악, 전쟁 관련 속보, 그리고 밖에서 들려오는 전투기 소리를 녹음했다. 한 차례 공습이 지나가면 아파트 베란다로 나가 사진을 찍었다. 일기에는 전쟁 관련 뉴스, 그리고 좋아하는 영화 목록 등을 적었다. 전쟁이 진행 중인 나라에서 살아가는 일은 개인적 사건과 공적 사건이 분리될 수 없음을 의미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취미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었다. 애초에 전쟁 중에 취미를 가지는 것이 가능할까? 취미의 핵심을 여유와 즐거움이라고 한다면, 자타리에게는 적어도 전자가 허용되었다. 중산층 교육자 집안에서 자라나 비교적 안전한 청소년기를 보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폭력과 파괴를 목격해야 하는 일상 속에서 무언가를 수집하고 기록하는 일이 온전히 즐거울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인지 자타리의 취미 아닌 취미는 업으로 이어졌다. 그는 학업을 마친 후 사진과 영상 작품을 발표하고 전시를 기획했다. 또한 아랍 이미지 재단(AIF)을 공동 설립하여,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의 사진 이미지를 보존하고 연구하는 데 힘을 쏟았다. 전후 레바논의 열악한 예술 환경 속에서 그는 작가이자 기획자, 아키비스트의 역할을 모두 수행했다. 그리고 이러한 활동을 통해 무엇보다도 개인의 삶과 공동체의 역사가 만나는 지점에 주목했다. 개개인의 이야기를 수집하고 기록하는 것이야말로 역사라는 공식화된 서사의 빈틈을 메꾸는 중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했다.
자타리는 1997년에 첫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었다. 스스로도 레바논이 겪고 있는 역사적, 정치적 문제들을 파악하고 싶어 만든 작품이었다. 이 영화에는 레바논 내전 때 이스라엘군에 대항한 민병대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중에는 네루다라는 별명을 지닌 소년도 있었다. 자타리가 무료함을 달래며 아파트 베란다에서 사진을 찍던 열여섯이라는 나이에 이미 여섯 번의 작전을 수행하고 이스라엘 감옥에 투옥된 인물이었다. 그는 10년간 복역하면서 어머니에게 편지를 보냈고, 자신은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의미로 편지지에 꽃을 그려 넣었다. 이 이야기에 매료된 자타리는 꽃이 그려진 편지를 사진으로 찍고 글자 부분을 지운 후 전시하기도 했다.
한편 2010년경, 중동 지역의 국제관계를 주제로 박사 논문을 준비하던 한 연구자가 이스라엘의 작은 서점에서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레바논 내전 관련 자료를 찾는다는 연구자의 이야기에, 직원은 자신의 남편이 당시에 공군으로 참전했다며 인터뷰를 주선한다. 남편의 이름은 하가르 타미르.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였다. 그는 자신의 참전 경험을 회고하며 레바논 공습 때 겪은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타미르는 비행 자체가 좋아서 공군에 입대했다. 그는 비행기가 하늘을 날면서 만들어내는 우아한 곡선을 좋아했고, 동료들과 나란히 열을 지어 비행하는 것을 즐겼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출동 명령이 내려졌고, 비행 도중에 언덕 위에 있는 작은 건물을 폭격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건축을 전공한 타미르가 볼 때 이 건물은 둘 중 하나임이 분명했다. 병원 또는 학교. 그는 명령을 내린 장교에게 무슨 건물인지 몇 차례 물었지만 애매한 답변이 돌아올 뿐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그는 오작동을 핑계로 지상과의 교신을 끊은 뒤 근처 바다에 폭탄을 떨어트린다. 이 일과 관련해 조사를 받게 되자 어떤 경우에도 학교나 병원을 폭격할 수는 없다고 진술한다.
2013년 베니스 비엔날레 화제작
타미르와 인터뷰를 하고 2년이 지난 후, 연구자는 자료조사를 위해 레바논의 아랍 이미지 재단을 방문한다. 이곳에서 아크람 자타리가 만든 책자를 우연히 집어 든 그는 무심히 책장을 넘기다 어느 순간 얼어붙는다. 자타리의 글에서 ‘명령을 거부한 조종사’의 전설을 언급한 대목을 읽은 것이다. 몇달 뒤, 연구자의 주선으로 두 사람이 만나게 된다. 명령을 거부한 이스라엘의 조종사. 그리고 어린 시절에 들은 그의 이야기에 매혹된 레바논의 예술가. 이 만남을 바탕으로 자타리는 ‘거부하는 조종사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작품을 만든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 전시되어 있는 ‘거부하는 조종사에게 보내는 편지’는 35분짜리 영화, 그리고 1982년에 촬영한 사진 필름 등으로 구성된 작품이다. 자타리가 레바논 대표로 참여한 201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처음 발표되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영화는 대체로 자타리의 소년 시절을 연상케 하는 화면들이 주를 이룬다. 일상을 보내는 십 대 소년들의 모습, 학교와 시내의 풍경이 잔잔하게 흘러간다. 평온하고 지루한 일상처럼 보이는 장면들 사이에 당시에 촬영된 흑백 사진들, 뉴스 화면 등이 등장하여 전쟁 상황을 간접적으로 암시한다.
거부하는 조종사의 이야기는 영화 후반에야 등장한다. 실제 일화는 짧은 뉴스처럼 자막으로 소개되고, 은유로 가득한 단순하고 아름다운 화면들이 교차된다. 종이로 비행기를 접어 날리는 소년들. 파란 하늘에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나란히 비행하는 세 대의 종이비행기. 그중 한 대는 전투기 소리를 내며 바다로 날아가 무언가를 떨어뜨린다. 멀리서 들리는 전투기 소리를 녹음하는 소년의 모습은 자타리와 타미르를 연결시킨 기묘한 우연의 순간을 포착하는 듯하다.
이 작품은 개인의 윤리와 공적인 임무 사이의 충돌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더 큰 맥락에서는 하나의 작은 사건이 일으킨 조용하지만 커다란 반향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타미르의 명령 거부는 결과적으로 어떤 결실도 맺지 못한 무용한 행위였다. 사실상 몇 분 후에 학교는 폭격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가 한 달도 안돼 피해 지역에 소문이 나고 전설처럼 회자된 것은 무슨 의미일까.
인간 훼손은 저질러지면 돌이킬 수 없어 전쟁은 대의명분으로 이루어지는 역사적, 정치적 서사이다. 이 서사에서 일상을 지켜주던 개인의 상식과 윤리는 후순위로 밀려난다. 전쟁의 각박한 현실을 살아내는 사람들에게 적군의 조종사가 품었던 인간적인 마음과 정의로운 결단은 얼마나 목마른 이야기였을까. 그런 점에서 이 이야기의 중요성은 전투기 조종사에게 인간의 얼굴을 부여한다는 데 있다. 작가가 말했듯, “전쟁의 시대에는 누구나 인간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편 이 작품의 제목은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의 에세이 ‘독일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따온 것이다. 2차 대전 중 가상의 독일인 친구에게 쓴 편지 형식을 띠는 이 글은 “나는 조국을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정의를 사랑하고 싶다”라는 문장으로도 유명하다. 카뮈는 전쟁은 물론 사형제도에도 적극적으로 반대했을 정도로 모든 종류의 폭력을 혐오했다. 전쟁이 벌어지자 그는 애국이라는 대의와 폭력에 반대하는 개인적 윤리 사이에서 치열하게 고민했다.
자타리의 작품과 카뮈의 글은 오늘 이 시간에도 유효한 문제들을 소환한다. 폭력은 다양한 형태와 명분으로 끊임없이 정당화된다. 그리고 이에 맞서는 개인의 윤리와 상식은 자주 시험대에 오른다. 그러나 카뮈의 표현대로 “인간에 대한 그 어떤 훼손도 일단 저질러지고 나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다.” 이 명백한 사실을 일깨우고자 그 속에 휘말린 개인의 구체적 이야기를 멈추지 않는 것. 여기에 아마도 문학과 예술의 역할이 있을 것이다.